극장가에 봄이 오고 있다. 21일 오전 현재 박스오피스 점유율 1위부터 4위가 모두 한국영화다. 그동안 '주토피아', '배트맨 대 슈퍼맨'이 상위권을 지키던 것이 무너지고 이달 개봉한 한국영화가 순위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영화를 보려는 극장가 분위기는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진 미지수다. 오는 27일 할리우드 대작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박스오피스 1위는 지난주 개봉한 조정석, 임수정, 이진욱 주연의 '시간이탈자'다. 과거 일어난 사건을 통해 현재의 비극을 막으려는 이야기가 숨 막히게 전개돼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중이다. '감성스릴러'란 장르로 개봉 이후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점유율 26%대로 누적관객수 66만을 기록했다.
2위는 강예원, 이상윤 주연의 미스터리 스릴러 '날, 보러와요'다. 본인의 동의 없이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대한민국의 정신보건법의 허점을 꼬집는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점유율 12.6%대에 86만명이 현재까지 영화를 관람했다.
3위는 경성의 마지막 기생의 이야기 '해어화'다. 배우 한효주와 천우희가 주연을 맡아 화려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로 관객몰이 중이다. 점유율 11.6%대로 30만 관객을 동원했다.
4위는 이번주 개봉한 '위대한 소원'이다. 삼총사 중 '고환'(류덕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우정꾼들의 이야기다. 웃음과 감동 코드를 동시에 잡아 개봉과 함께 4위 진입이 가능했다. 박스오피스 2, 3위와 큰 차이 없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번주 개봉작은 '위대한 소원'을 비롯해 잔잔한 분위기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는 '철원기행'과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브루클린' 등이 있다.
당신에게 묻는 가족의 의미
●철원기행
철원의 고등학교 선생님인 아버지(문창길)의 정년퇴임 날, 각자 떨어져 살던 어머니(이영란 ), 결혼을 앞둔 큰아들 내외(김민혁, 이상희), 막내아들(허재원)은 강원도 철원에 모인다. 학생 몇 명만 참석한 초라한 아버지의 퇴임식 후 가족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아버지의 선언에 어머니는 당혹스러워하고 자식들은 불편해한다. 갑작스러운 이야기 후, 마침 철원에는 폭설이 내리고 가족들은 2박 3일 동안 아버지의 관사에서 예상치 못한 동거를 하게 된다. 아버지의 이혼 선언 때문에 가족들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다.
말수가 적고 고집이 센 아버지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어머니, 큰아들 내외와 막내아들까지 각자 너무 다른 가족들은 살얼음판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속마음을 알게 된다.
영화 '철원기행'은 김대환 감독의 기행경험이 녹여진 작품이다. 고등학교 교감과 초등학교 교장의 장남인 김대환 감독은 도내 각지에서 교편을 잡던 부모님 때문에 가족들이 흩어져 지낸 경험이 많다. 아버지는 철원에, 어머니는 춘천에, 자신은 서울에, 동생은 천안에 살면서 '가족이긴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 김대환 감독은 당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영화에 녹여냈다.
영화는 단순히 가족의 분열이나 단절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들을 함께 지내며 알아가고 관계를 진전해 나가는 것에 의미를 둔다. 우리는 과연 가족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또 얼마나 알아가려고 노력하는지 반문한다.
'철원기행'은 강원문화재단의 '2014 강원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작'이다. 영화는 지난 2014년 1월부터 2월 사이 강원의 지원을 받아 철원군과 고성군 지역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됐다. 김대환 감독은 실제 강원도 출신으로 강원문화재단 영상지원팀이 그의 첫 장편영화의 개봉을 지원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감독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작품과 감독에 대한 기대를 내비친 바 있다.
이 남자냐, 저 남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브루클린
영화 '어톤먼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그녀만의 풋풋함을 뽐내던 시얼샤 로넌은 '브루클린'을 통해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식 성인 연기에 도전한다. 시얼샤 로넌은 방황하며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또 다른 설렘에 흔들리는 에일리스를 연기했다. 서로 다른 매력의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에일리스를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그려낸 시얼샤 로넌은 한층 더 깊어진 눈빛과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낯선 뉴욕에서 만난 사랑과 또 다른 만남의 설렘을 우아하고 감성적으로 그려낸 영화 '브루클린'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섬세히 담아냈다.
영화 '브루클린'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두 공간에서 사랑을 그려낸다. 에일리스의 고향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 에니스코시와 에일리스가 새로운 시작을 내딛고 사랑을 찾은 뉴욕 브루클린이다. 1950년을 배경으로 미국과 아일랜드의 서로 다른 분위기와 배우들의 풍부한 연기는 서정적인 조화를 만들어낸다. 공간처럼 의상도 다채로운 색감의 브루클린 스타일과 단정하고 소박한 아일랜드 스타일로 대조를 이룬다.
1950년대 뉴욕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유행한 의상이 담긴 패션잡지들은 참고하지 말라는 존 크로울리 감독의 말을 참고삼아, 거리 사진 작품들, 특히 비비안 마이어와 엘리어트 어윗의 사진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 결과 자연스러운 시대 의상이 표현됐다. 1950년대의 뉴욕 브루클린과 아일랜드를 표현한 의상과 영상미로 관객들의 기대감은 한껏 고조된다.
죽기전에 딱 한번만… 혈기왕성한(?) 소원, 절친들이 나섰다
●위대한 소원
영화 '위대한 소원'은 남대중 감독의 첫 영화다. '천하장사마돈나' 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류덕환이 주연을 맡았다. 류덕환은 군입대 전 작품으로 '위대한 소원'을 선택하며 “나도 겪었던 사춘기 소년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고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고 말했다. 고환의 절친 '남준' 역할은 영화 '짝패'와 '완득이'를 통해 연기력을 쌓은 김동영이 맡았다. '감덕' 역의 안재홍은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임효인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