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일은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다. 곡우는 곡식곡(穀)과 비우(雨)가 합쳐진 한자로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곡우에는 나무에서 나온 수액을 마신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이시기 복숭아꽃이 피고 나무에는 물이 차오른다. 전국 각 지역의 명산에는 곡우물을 먹으러 모여든 사람들로 붐빈다. 산다래와 자작나무, 박달나무에 상처를 내고 그 틈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여러날 모아 받아 마신다. 수액으로 유명한 지역에서는 약수제를 지내기도 한다. 고로쇠 물은 남자에게 좋고, 거자수는 여자에게 더 좋다는 속설이 있다.
거자수는 지리산 구례에서 많이 나고 현지인보다는 외지 사람들에게 약효가 좋다는 이야기 있다. 나무에서 나오는 물이 병을 고칠까… 믿기지 않지만 간절한 마음이 의지하는 작은 민간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곡우가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때마침 20일 밤부터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다. 올해 여섯 번의 절기가 지날 때마다 절기가 지닌 특성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대한에는 강력 한파로 이름값을 했고, 우수에는 지역 몇몇 곳뿐이었지만 비가 내렸고, 지난 청명에는 파란 하늘을 보았다. 아직 봄일 뿐인데, 모두 풍년의 징조일까?
▲곡우에는 볍씨를 담가 키우는 중요한 절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볍씨도 부정을 탄다?
곡우가 되면 못자리를 준비하는데, 볍씨가 담긴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둔다. 초상집에 가거나 부정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보려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또 아무나 만지게 두지 않았고 금줄을 둘러 고사를 지내던 고장도 있었다.만약 부정한 자가 집에 들어오려 할 때는 집 앞에 불을 놓아 그 위를 건너오는 악귀를 물리치는 행위의식을 거쳐서 들여보냈다. 다소 유별난 행동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농경사회에서는 쌀만큼 중요한 재물은 없었다. 먹을 것이 귀했던 만큼 음식을 키워내는 농사의 모든 절차가 조심스럽고 예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작은 볍씨조차도 부정을 타지 않도록 노력했을 조상들의 지혜가 참으로 수고스럽고 대단하지 않은가.
곡우 즈음에 잡히는 조기를 곡우사리라 부른다. 흑산도에서 겨울을 보내고 격렬비열도로 올라온 조기를 잡으려는 어선들로 북적인다. 아직 살이 통통하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연한 맛과 알이 많이 들어 있어 굴비의 고장인 전남 영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곡우는 비가 내려 곡식들을 기름지게 하는 절기지만, 몇몇 지역에서는 오히려 비가 내리면 농사에 좋지 않다는 속설이 지닌 곳도 있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봄의 절기는 15일 이후면 끝나지만 파릇파릇한 봄의 생명들은 더더욱 힘 있게 자랄게다. 24절기와 날씨는 우리를 지탱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삶의 지표다. 곡식들이 기름지게 자라도록 밤새 촉촉한 봄비가 땅을 적셔주기를 빌어본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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