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산층이 무너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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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중산층이 무너지면

  • 승인 2016-04-06 14:03
  • 신문게재 2016-04-07 23면
  • 이상용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이상용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 이상용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 이상용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때는 바야흐로 구한말 1895년.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민비)가 경복궁에서 일본 사무라이 자객들에게 피살됐다. 조선이 건국된 지 약 600년만의 일이다. 국가의 심장부인 궁궐에서 왕비가, 그것도 일본의 정규군도 아닌 일개 사무라이에게 피살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라는 껍데기만 남았고 이미 국가 운용 시스템과 방어기제가 다 허물어진 상황이었다. 15년 후 한일강제병합조약으로 나라가 망했지만 이미 그 이전에 나라가 제 기능을 상실하고 해체되었던 것이다.

당시 고관대작 양반들은 대대손손 먹을 것을 쌓아놓고 있었지만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생계를 겨우 이어나가거나 양반집의 노비로 전락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소위 부유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늘어 전 국토가 이들의 손에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백성은 양반을 먹여 살리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이는 나라를 지탱하는 건강한 중산층이 사라지고 양극화가 진행되며 나타나는 해체된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조선말기 뿐 아니라 나라가 망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부가 먼저 무너져 내리고 외세의 침략이 이어진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라고 불리던 팍스로마나(Pax Romana)의 로마제국도 그 말기에는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근 2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75%에서 65%로 10% 포인트 줄었다. 이렇게 줄어든 중산층의 3분의 1정도는 고소득층이 되었지만 3분의 2정도는 저소득층으로 급격히 추락했다.

중산층은 그 사회를 탄탄하게 지탱해주는 근간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안전판 역할을 하면서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주고 사회 안정화에 기여한다. 중산층이 허물어지면 건전한 소비가 사라진다. 그런데 경제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마저도 위협을 받는다. 강남으로 대변되는 부유층과 농어촌의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가는 모습이 전혀 다르다. 한 나라에서 한 백성으로 살아가지만 마치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피부빛깔이 다른 외국인처럼 공감대가 거의 없다. 서민들은 연탄과 김장값, 버스비가 오르는 것을 가장 걱정하지만 부유층은 이런 일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간다. 명품백과 고급외제차가 주된 관심이다.

우리는 중산층이 줄어드는 현상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양극화가 고착되면 고소득층에 속한 사람들은 고소득층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자자손손 물려주기 위해서 계층이동을 가로막기 위한 장치를 곳곳에 만들게 된다. 점차적으로 이른바 계급이 형성된다. 반면에 저소득층에 속한 사람들은 자포자기 하거나 극단적인 행동과 선택을 하게 된다. 필자는 최근에 금수저, 흙수저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도 두렵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비아냥 속에 함축된 부러움과 함께 숨어 있는 적대감. 그 곳에서 무서운 파괴본능을 본다.

인도는 계급사회로 유명하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라는 4계급이 있고 그 밑에는 인간취급도 받지 못하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 있다.

인도인들은 조상 대대로 같은 계급을 가지고 태어나서 평생 주어진 계급 안에서 산다. 계급 간의 이동은 상상 조차할 수 없다. 거대한 인도 사회가 부조리해 보이는 이런 계급을 가진 채 나름대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힌두교라는 종교가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은 과거 행위에 대한 업이며, 생은 윤회된다는 사상을 가진 힌두교는 사람들을 자신이 속한 계급사회 안에 순응하도록 만든다.

우리 사회에는 힌두교와 같이 국민을 순응시키는 장치가 없다. 은근과 끈기를 자랑으로 하는 우리 국민은 무서운 저항정신을 가지고 있다. 단언컨대 양극화가 더 이상 계속 진행된다면 머지않아 가슴 속의 응어리들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중산층이 줄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하루라도 빨리 전환해야 한다. '헬조선'이라는 무서운 자기좌절과 사회불신의 용어가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상용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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