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포암 이백하 선생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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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포암 이백하 선생을 아십니까?

유관순 열사와 4.1 만세운동 동지로 지역 독립선언문 작성해 현재 원본은 없고, 전문만 남아있어 … 원본찾기 운동 시급

  • 승인 2016-04-01 11:13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이백하 선생을 세상에 처음 알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를 만나다


이 운명은 약국에서 시작됐다. 수업이 끝나면 지역 뒷골목을 배회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옛 역사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늘이 감복했나보다. 물 한잔 얻어 마시려 들어간 약국, 70세가 넘은 약사는 문득 ‘이백하 선생’을 아느냐 물었다.

▲이백하 선생을 10여년간 연구해왔던 신상구 선생.
▲이백하 선생을 10여년간 연구해왔던 신상구 선생.

“유관순은 알고, 이백하는 모른다고? 이것 봐. 이래서는 안 되는 거야.”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국학박사·향토사학자·시인·칼럼니스트) 선생은 어린기자의 무지한 대답에 탄복했다. 이백하, 이름 석자를 내뱉는 순간 신상구 선생의 눈빛은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보물을 발견한 듯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로부터 97년 전 1919년 4월1일로 돌아 가보자.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이 드디어 천안까지 이어졌다. 유관순을 비롯한 3000여명의 지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 만세운동으로 19명이 사망했고 유관순을 비롯한 주요 주도자들은 형무소에 갇히게 됐다. 이후 유관순은 모진 고문으로 순국했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여기까지다. 유관순 열사와 아우내장터, 그리고 만세운동.
그러나 우리가 몰랐던, 줄곧 잊혀져 왔던 새로운 역사가 있다.

만세운동이 펼쳐진 오늘 오후 1시께 조인원 선생이 대한독립이라 쓰인 큰 깃발을 아우내 장터에 세웠고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 독립선언서에 있다. 혹자들은 이 독립선언서가 3월1일 파고다공원에서 선언된 최남선과 한용운이 작성한 것을 유관순 열사가 서울에서 가지고 내려왔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의 독립선언서는 천안지역의 고유한 독립선언서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가 특별한 이유

▲1978년 충북도에서 국민훈장 애족장을 받는 포암 이백하 선생.
▲1978년 충북도에서 국민훈장 애족장을 받는 포암 이백하 선생.

아우내장터의 독립선언서는 포암(逋巖) 이백하 선생이 최남선과 한용운의 독립선언서를 참고해 재작성, 구국동지회의 이름으로 제작했던 사실이 후대에 발견됐다. 이백하 선생이 자체적으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이유는 파고다공원에서 선언안 독립선언서가 너무 길었고 난해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백하 선생이 한글 513자로 재작성 한 것이다. 미농괘지에 수일간 복사해 모여든 시민들에게 배부했고 이를 조인원 선생이 기미년 4월1일 아우내 장터에서 낭독했던 것이다. 만세운동의 기획은 이백하 선생, 자금과 관련된 문제들은 유관순 열사의 숙부인 유중무씨가 맡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우내장터의 독립선언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충청문화역사연구소 신상구 선생이 2008년 발표한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논문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지방에서 독립선언서를 자체 기초해 선언한 곳으로 밝혀진 곳은 경남 함안과 하동 그리고 천안 아우내 뿐이었다. 이는 지역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라 볼 수 있다. 이 독립선언서는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사에 아주 드문 사례로 꼽힌다. 쓰여진 글을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현실과 어울리는 독자적인 생각을 담았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와 의미는 충분하다.

원본을 찾아야 한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전문. 현재 원본은 없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전문. 현재 원본은 없다.

이백하 선생을 아는 사람은 드물고, 그가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아니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터. 이백하 선생과 그의 업적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선생이다. 2006년 3월14일 물 한잔 마시러 들어갔던 상호약국에서 약사 임맹순(그 당시 70세)씨로부터 이백하 선생을 알게 된 운명의 주인공.

“새로운 사료를 발견한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아. 독립운동사는 민족의 혼이여. 대한민국 정체성이 독립운동에 있는 것이지. 이백하 선생에 대한 자료가 하나도 없었지. 가족과 유족 전화번호를 찾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어. 전주이씨 덕천공파 종중 일을 맡아하는 제주대 원자력공학과 이현주 교수를 우연히 알게 됐고, 친척을 연구한다고 하니 자료를 찾아주고 가족들 주선까지 해줬지.”

그러나 며느리를 비롯한 유가족을 만났지만 이백하 선생에 대한 자료는 턱없이 부족했고, 국가에 제공된 자료 또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백하 선생의 외아들인 이은창 선생이 1977년 작성해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공적조서에는 사실 독립선언서 작성에 대한 기록은 누락되어 있었다. 자료는 모두 준비해뒀지만 공적조서에는 미처 싣지 못했던 것. 또 유가족이 독립선언서가 가지는 중요성을 미처 인지 못했던 것도 한몫했다. 이백하 선생이 1985년까지 살아 있었고 1978년 국민훈장 애족장을 받았지만 이때까지도 독립선언서에 작성에 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백하 선생 스스로 자신이 독립투사였음을 밝히기를 꺼려했을지도 모르나 후대에 남겨질 자신의 업적에는 큰 여백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신상구 선생의 각고의 노력으로 이를 입증할 자료는 확보됐지만 원본이 없다는 점에서 역사학계의 논쟁은 피할 수 없는 맹점이 됐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김형목 연구위원은 “서울에서 만들어진 독립선언서가 지역으로 내려와 지역실정에 맞게 수정이 된 것은 맞다. 그러나 원본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은 있지만 실제로 쓰여진 사본 한 장 남아 있는 것이 없다.

“10여년을 연구하며 찾아다녔지만 원본을 못 찾았어. 오늘을 기회로 원본찾기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시작됐으면 좋겠어. 원본을 찾아서 독립기념관에 소장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내 소원이지. 내가 일생을 바쳐서라도 꼭 찾을거야.”

올바른 역사 세우기는 사명

▲앞으로도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신상구 선생.
▲앞으로도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신상구 선생.

“이백하 선생은 3.1만세운동이 이후 청주고 교사생활을 했고, 현재도 불리고 있는 청주고 교가를 쓴 사실 또한 새삼 알게 됐지. 팔만대장경을 모두 꾀고 있었고,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홀로 학교를 지킨 분이셨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서 교감 승진도 마다했고 독립선언서나 충주 중앙탑, 유관순 열사의 업적을 가르치는 열혈 스승이셨지.”

높은 갈문을 찾아 모여든 우리
어버이 스승님의 뜻을 받들어
꾸준히 갈고 닦아 힘을 기르니
보아라 청고는 청고는 젊은이 등불

무궁화 묵은 그루 다시 북돋고
옛 나라 새 목숨을 가다듬어서
반만년 한 배의 길 힘써 지키니
보아라 보아라 청고는 나라의 방패

-청주고 교가 작사:이백하 작곡:김하경

이백하를 모르고 4.1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유관순 열사가 한국의 잔 다르크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이백하를 비롯한 우리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독립투사들의 희생이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유관순은 이화학당의 김란사 선생에게 독립에 대한 의지와 사상을 배웠고 고향으로 내려와 이백하, 김구응, 조인원, 조병호, 홍일선, 김상훈 등 48명의 동지이자 든든한 항일투사들을 만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만세운동, 인물로 기록되었다. 유관순 열사 혼자만의 업적으로 남기에는 이름 없이 지워진 역사의 주인공들이 너무나 애석하다. 모두의 역사로 모두의 업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국가와 보훈처에서도 잊히고 있는 애국지사와 항일투사에 대한 적합한 대우를 위한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 이백하 선생의 독립선언서 원본 발굴에 힘쓰고, 구국동지회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 또 아우내 장터 항일독립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천안지역 학생들에게 현장체험학습을 강화하고 매년 3월1일 개최되는 봉화제에 적극 참여토록 홍보해야 한다.

신상구 선생은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신상구 선생은 중고등학교에서 사회와 국사를 가르쳤고 향토사학자이며 재야 민족사학자이다. 사실 향토사학자들은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에서 경제적 지원이 전무하기 때문에 항상 자금난과 시간난에 시달린다. 또 남아있는 사료가 없어 사료난에 봉착하기도 하는 어려운 직업이다. 이백하 선생 연구 논문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상을 받았다. 이는 자신만을 위한 영광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우리나라 역사가 많이 변질됐어.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 고서를 모두 불태웠거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아주 일부분에 불과해. 거의 모른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거야. 내가 계속해서 역사를 공부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연구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찾기위한 일이야. 계속 공부할거야. 역사는 우리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힘이니까.

까마득하게 묻혀있었던 이백하 선생의 독립선언서를 세상에 알린 공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올바른 역사, 올바른 세상, 신상구 선생은 평생을 역사 외길을 걸어왔다.

97년 전의 오늘, 아우내 장터에서 외쳤을 만세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유관순, 이백하, 김구응, 조인원, 조병호, 홍일선, 김상훈… 우리는 몰랐던 당연하게 잊고 살았던 영웅들이 그곳에 있었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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