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권 목원대 총장 |
그러던 어느 날 그 나라에 민족 간의 전쟁이 일어났다. 평화롭게 섞여 살던 두 마을이 하루아침에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그토록 사이좋게 지내던 이웃 마을이 이제는 서로 오갈 수도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두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게 작별인사도 못한 채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문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이웃마을에 사는 친구가 거기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친구는 전에 빌렸던 얼마 안 되는 돈을 내밀면서 이젠 서로 볼 수 없을 것 같아 그것을 갚으러 왔노라고 했다. 그 친구가 내민 돈은 목숨을 걸면서까지 갚아야 할 정도의 액수는 아니었다. 그걸 갚으러 왔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었다. 진짜 이유는 전쟁을 핑계로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와 작별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두 친구는 와인을 함께 마시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이제 헤어지면 원수가 된 두 나라는 서로 오갈 수도 없게 될 상황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두 나라의 정치적 관계일 뿐이었다. 그것은 친구라고 하는 둘의 관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날 밤 이후로 그 친구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후 전쟁은 끝났지만, 국경이 가로막고 있는 두 마을은 폐허가 된 채 쓸쓸히 버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쪽 마을에서 살아남은 친구는 그 마을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언제 이웃마을의 그 친구가 헤어지던 날 밤처럼 또다시 창문을 두드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수십 년이 흘러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서도 그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그 살벌한 국경마을에서 옛 친구가 살던 곳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요즘,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모자라는 일자리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차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모두를 짓누른다. '사람들이 모두 나의 경쟁자로만 보인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친구 같은 건 필요 없고, 난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리라.
한참 꿈을 꿔야 할 나이의 젊은이들 가운데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저 친구에게 털어놓기만 해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말, 작은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큰 병을 만든다.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친구가 되고 형·아우가 되기에 딱 좋은 동아리 활동이나 방과 후 활동이 줄어들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야말로 망망대해의 외딴 섬처럼 살고 있다.
집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아니, 그들이 이렇게 된 원인을 제공한 곳이 그곳일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은 입만 열면 죽을힘을 다해 취직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신다. 친구들 하고 놀러 다니기도 하고 취미활동 같은 것을 권하면 좋으련만,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빈둥대는 모습을 상상하면 도저히 그런 말이 안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관계는 다층적(multi-dimensional)이다. 적은 일자리를 놓고 다수가 경쟁하는 그 하나의 관계가 모든 다른 차원의 관계를 질식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것들을 하루아침에 버리는 것과 같다. 정치적 관계에서는 철천지원수이고, 따라서 전쟁이 나면 서로 총질을 해댈 수밖에 없다 해도 친구가 여전히 친구인 것은, 인간은 수없이 다양한 차원의 관계가 만들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새 학기의 어색함도 슬슬 풀려갈 즈음이다.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평생을 함께 할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취직 같은 것 때문에 이런 관계들을 모두 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수많은 층위의 관계들로 인하여 우리는 비로소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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