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임병철 소장, 안닌코바 이리나씨, 코디네이터인 라나씨 |
뇌신경 및 다발부위 척추신경 종양 환자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환자용 카트에 실려 들어왔는데, 이제 내 발로 걸어서 병원을 나서다니 꿈만 같아요.”
선병원재단(이사장 선두훈) 대전선병원 의료진이 사지가 마비돼 우리나라를 찾은 러시아 환자에게 제 2의 삶을 선물했다.
안닌코바 이리나(32·여ㆍ 이하 이리나) 씨는 약 3년 전부터 뇌신경 및 다발부위 척추신경 종양을 앓고 있었고 러시아에서 일부 커진 양성 종양들을 치료했다. 그러나 지난 해부터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팔다리가 마비되고 감각을 잃어갔다. 급기야는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러시아 유명 종합병원과 척추전문병원 등 여러 병원을 찾아다닌 결과 ‘다발성 신경섬유종’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희망이 없다는 절망적인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던 중 대전 선병원에서 치료경험이 있는 지인의 소개로 지난해 7월 척추센터 임병철 소장과 처음 마주하게 됐다.
임병철 소장은 “상부경수와 뇌간 사이에 인접해 있는 종양이 경수를 심하게 압박하고 있어 목 아래쪽이 모두 마비돼 있었고, 이로 인해 폐도 50% 밖에 기능하지 못해 자발호흡조차 힘겨울 정도였다”며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 몇 개월도 못 버틸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임병철 소장은 종양 중에 생명과 직결되는 부위의 척추신경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술은 난이도와 위험도가 높았고, 수술 후 합병증도 우려됐다. 민감한 척수 신경조직이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고, 부종, 폐, 심·뇌혈관계 기능부전에 의한 전신마비, 그리고 사망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리나 씨와 가족들은 이러한 중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 후 그녀는 거짓말처럼 기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의 감각이 돌아왔고 재활치료를 통해 걷는 것도 가능해졌다.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있게 됐다.
항암제 치료도 이어졌다. 종양 조직검사 결과 예후가 좋지 않은 ‘악성 전이성 흑색종’으로 진단됐기 때문이다. 이리나 씨는 항암제 치료도 선병원에서 받기를 원했다. 먼 비행길의 고행을 마다하지 않고 7번이나 선병원을 더 찾았다. 그리고 지난 3월 중순 마침내 선병원에서의 치료를 마치고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리나 씨는 “12살 난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만이라도 살고 싶었다. 러시아에선 포기했지만 한국의 선병원은 새생명의 희망과 살아갈 의미를 찾게 해줬다. 한계를 넘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주신 한국 의료진과 힘든 시간 함께해 준 선병원 코디네이터 라나 씨에게 감사드린다. 새 삶의 기회를 준 이 사회에 감사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박노경 병원장은 “긴밀하게 협조해 준 암센터 의료진과 첨단 의료장비, 러시아 의사출신 코디네이터 등 그동안 축적된 선병원의 해외환자 진료시스템 덕분에 성공적인 치료가 이뤄질 수 있었다”며 “멀리 타국에서 선병원을 믿고 찾아온 환자인데 치료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 기쁘고 돌아가서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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