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석 대전중리초 교장 |
우리집은 마을에서 마당이 가장 넓은 탓에 늘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공차기, 자치기, 팽이치기, 구슬치기, 말뚝밖기(말타기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딱지치기, 오징어, 공기놀이, 땅따먹기….
지금은 기억도 아련하지만 형들과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과 어울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날이 저물도록 놀이에 빠져있곤 했었다.
그땐 마땅히 시간을 보낼 만한 다른 놀이나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전통놀이의 인기는 지금의 인터넷 게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대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했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둘러메고 하나 둘씩 모여서 뛰어 노는 것이 일과였다.
놀이를 하다보면 의견 충돌이 일어나서 다투기도 하고, 형들의 중재로 해결하기도 하였으며, 서로의 주장을 조금씩 양보도 하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갔다.
이제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니 그때는 놀이라는 문화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친구, 형, 동생이라는 인간관계 속에서 참 많은 것을 몸으로 익혔던 것 같다. 규칙을 지켜야 하는 당위성을 배웠고, 내가 양보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배려심을 배웠으며, 선의의 경쟁으로 승리를 이끌 때 가장 큰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을 배웠고, 인내심을 키우며 우정을 쌓았다. 또한 새로운 규칙을 창출해 내는 과정에서 자기의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관계의 기본을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가끔 혼잣말처럼 '그땐 그랬었는데,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하고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절대빈곤시기, 베이비붐의 끝 세대로 자란 나의 눈으로 요즘의 아이들을 보면 부러움과 동시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물질적인 풍요와 인격적으로 대우받는 시대를 사는 부러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동이나 형제로 자라는 빈약한 가족관계와, 아이들의 희망보다는 부모의 의지에 따라 프로그램화된 틀에서 길러지는 화초 같은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무한경쟁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 그리고 규칙을 배우기도 전에 타인을 이기고 앞서는 것만 배운 우리 아이들이 걱정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교실이나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과 함께하는 놀이 활동을 통해 책 속에서 얻을 수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이제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놀이 시간을 찾아주어야 할 때인 것 같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땐 그랬었는데,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하고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한 때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형제가 많아서 가족끼리도 놀이가 충분했지만 지금은 친구들이 아니면 놀이조차도 어려운 현실에서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하다는 것을 머리와 가슴으로 느낄 줄 아는 아이들의 미래를 기대한다.
어려서부터 놀이와 함께 생각이 자라고, 인성과 창의성, 그리고 협동심과 자주성 또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형성된다는 것을 직시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가슴에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이영석 대전중리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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