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왜 분유통에 도난방지 경보기를 매달아 뒀지? 당황스러웠다.
“하도 훔쳐가서요…” 말하면서도 멋쩍은 듯 웃는 매장 직원. 씁쓸했다.
지난 3월 5일 주말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방문한 대전의 한 대형마트 매장. 카드를 밀며 매장 곳곳을 돌던 중 낯선 상황을 목격했다. 가난해서 훔쳤거나, 혹은 제어할 수 없는 도벽 때문이거나… 이유를 불문하고 분유 도난이 지금 세태와 어울리는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난다고 해서 모두가 동등하게 잘 먹고 잘살지는 못한다. 어쩌면 분유통에 매달린 저 경보기는 우리 시대가 이만큼 살기 어렵다는 반증은 아닐까?
대전 주요도심에 있는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수년전부터 분유통에 도난 경보기를 부착했다. 심지어 진열되어 있는 분유통은 내용물은 없는 텅 빈 깡통들. 구매를 원한다면 직원에게 수고스럽게 구매의사를 밝혀야 한다. 계산을 해야만 온전히 새 상품인 분유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고객들은 “불편하다”와 “이해한다”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매장에서 만난 정모(30대 여자)씨는 “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고객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조치다. 불편함을 감수한다 치더라도 도난 경보기를 보는 순간 정상구매를 하려는 나조차 도난범이 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어머니는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했겠어요. 이런 큰 마트에서 물건 훔치는 사람들도 대단하다”며 대형마트의 예방책에 동의한다는 입장이었다.
인터뷰 사례를 볼 때 직접구매자와 방관구매자의 입장은 확연히 달랐다. 30~40대 부모세대들은 구매 이중절차 등에 관한 어려움을 토로했고 50~60대 할머니세대들은 양심 없는 도난사례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
불편함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고객의 편의를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지향하는 대형마트가 고객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도난 경보기 정책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대형마트 관계자는 “고객의 불편은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지만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고객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도난사례가 많다. 고액 상품이기 때문에 도난이 발생했을 때는 마트가 겪는 타격이 크다. 경보기가 부착된 분유통 때문에 불편하시겠지만 고객들의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26일 전북일보의 기사를 보니 쌀과 반찬 등을 훔치는 생계형 범죄가 늘었다고 한다. 연령을 떠나 범죄 사유는 장기불황에 따른 우발적인 범죄. 경제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이 원치 않았으나 사회적 환경에 의해 범죄자가 되는 씁쓸한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비난하기 이전에 최소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복지를 누리며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도덕적인 잘못은 분명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의 검은손이겠지만, 최소한의 복지와 경제적 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접근해본다면 국가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분유통에 둘러진 도난경보기에는 장기불황과 경제적 소득불평등, 복지의 현주소까지 많은 사회적 문제점이 점철되어 있었다. /이해미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