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지난 두 차례의 글에서 필자는 지금까지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이성 정부는 바야흐로 그 2.0 또는 3.0 버전인 감성 정부로 진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성을 아예 버리고 감성만을 받들자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이성의 바탕 위에 감성의 새로운 가치를 존중하면서 이를 행정의 금과옥조로 삼자는 것이다. 이러한 감성 정부는 문화적 감각에 충실하고 품격 있는 문화를 지향하며, 사회적 자본 같은 무형 자산을 깊이 인식함과 아울러 각급 공공조직의 자율·책임 경영을 옹호할 줄 아는 감성적 지성 리더십(emotional intelligence leadership)이 요구된다고 했다.
지난 글들을 읽은 몇몇 지인이 그랬다. 감성 정부의 개념도 알겠고 그 필요성 또한 충분히 인정하겠는데, 딱히 뚜렷한 그림이 안 떠오른다고. 그러고 보니 일반에게는 생소한 '감성 정부'를 이론적으로만 주장하기에 급급했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일지 모르지만 오늘은 신뢰, 배려, 참여, 소통, 협력, 나눔 같은 사회적 자본의 관점에서 감성 정부의 한 모습을 다시 확인해 본다. 개인별 이기심과 계층별 위화감이 날로 심해지는 요즘, 감성 영역에 속하는 사회적 자본 확충 정책은 여러 정부들이 굳이 그리 명명하지 않고도 실제로 전개해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의 정부들은 과연 사회적 자본을 내세울 자격이 충분한가. 그렇다, 라는 즉각적인 답을 들을 수 있다면 감성 정부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필자만일까. 사회적 자본 확충 정책은 각급 단위 정부 스스로 주민들과의 진정한 신뢰, 배려, 참여, 소통, 협력, 나눔의 가치를 구축하고자 하는 각성 및 노력과 함께 가야 함에도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정부와 주민들 사이부터 형성되어야 할 사회적 자본의 토대가 턱없이 허약한데, 주민들에게만 이를 요구하는 형국이다. 시쳇말로 유체이탈화법. 제 스스로 먼저 사회적 자본을 쌓아가는 더없이 겸손한 정부야말로 감성 정부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힘이 쏠리는 불균형 상태를, 때로는 이에 근거하거나 이를 악용하는 부조리와 불합리 자체를 우리는 갑을관계라고 일컫는다. 합법적 권위에 기반을 둔 정부가 바로 그 합법적 권위로 인해 본의 아니게 갑이 되지만, 이러한 합법적 권위만으로는 결코 주민의 감성을 다 다스리지 못한다. 감성이란 본래 합법적 권위보다는 감정과 관습이 작용하는 전통적 권위에 더 순응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세기에서 마땅히 정부는 감성적 권위, 문화적 권위를 가져야 하며, 이러한 낮은 권위로써 높은 감동을 주는 정부가 감성 정부인 것이다.
여론에 귀를 막는 일방적인 행정에서 어떤 신뢰를, 복지든 고용이든 생색내듯 행해지는 행정에서 무슨 배려와 나눔을, 추진회의든 자문회의든 다 짜놓고 거치는 절차 위주의 행정에서 누구의 참여와 소통과 협력을 바라는가. 감성 정부는 개인의 역량과 조직의 힘을 혼동하지 않는다. 작은 권력을 크게 쓰는 완장도, 큰 권력을 부당하게 쓰는 갑질도 없다. 아무리 선한 정부의 공정한 행정 행위도 일방적으로, 생색내듯, 절차 위주로 펼쳐져서는 아니 된다. 여태까지의 차가운 무채색의 이성 정부는 이제 따뜻한 천연색의 감성 정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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