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
파릇파릇~ 졸졸졸~ 개굴개굴~
슬며시 기지개를 켜는 봄의 소리다. 겨울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니 봄의 기운이 이토록 따스했던가, 새삼 미소가 지어진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는 속담이 있다. 하늘과 땅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말하는 삼라만상이 깨어난다니, 봄은 참 부지런하다. 세상 곳곳을 다니려면 말이다.
3월4일은 24절기 가운데 봄의 절기인 ‘경칩’이다. 동면하던 동물과 벌레들이 깨어난다는 뜻으로 계칩(啓蟄)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놀랄 경(驚) 벌레 칩(蟄), 이 시기가 되면 한랭전선이 지나가면서 천둥이 자주 치는데 천둥소리에 놀라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속설이다.
우수가 봄을 깨우는 절기였다면 경칩은 삼라만상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활동하는 시기라 하겠다. 농촌도 활기찬 하루하루를 맞이한다. 농기구를 재정비하고, 땅을 고르는 농사의 진정한 출발선인 셈이다.
▲개구리알이 만병통치약?
▲게티이미지뱅크 |
경칩에는 다소 황당한 풍습이 있었다. 논이나 냇가에 개구리알 또는 도룡뇽알을 퍼와서 몸보신위해 먹었다. 특히 신경통이나 속병, 요통에 효험이 좋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가슴이 시원해지고 뱃속의 벌레를 없애준다고도 한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도 총명해지는 효과가 있어 남몰래 먹었으며 여름에는 더위를 타지 않게 해주고 다리에는 땀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가 먹으면 양기를 돋을 수 있어서 소주와 함께 마시거나 콩고물을 묻혀 먹었다. 한마디로 개구리알은 만병통치약이었던 것. 만물의 생기를 담고 있는 잉태의 상징이 개구리알이었다. 효과는 증명할 수 없으나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플라시보 효과’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 시기에만 마실 수 있는 특별한 음식 또 하나, 고로수액이다. 단풍나무나 어름넝쿨을 베어 그 수액을 마시는데 첫 수액으로 한 해의 새 기운을 받고자 하는 의미였다. 수액은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나오지 않고 오직 맑은 날, 경칩시기에만 받을 수 있었다.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직접 왕이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를 지냈다. 매년 경칩이 지난 뒤 왕이 친히 제향을 드리고 적전을 갈았다. 선농제는 관념적인 제사가 아니라 왕이 직접 농사에 참여해 모범을 보이는 실천성을 수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제사였다.
지난주 코끝 시리게 불었던 겨울바람이 봄바람에 제압당해 한발 물러섰다. 바람도 비도 봄의 기운을 싣고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다. 머지않아 초목이 파릇파릇하게 옷을 갈아입을 테고 하늘과 땅, 바다의 생명들도 힘찬 몸짓을 보여주리라.
개굴개굴~ 경칩의 주인공도 곧 깨어나겠지. /이해미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