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모성, 위대하고도 고통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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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모성, 위대하고도 고통스러운

  • 승인 2016-02-25 12:33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뼈가 앙상한 11세 소녀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빵을 훔쳐 먹다, 아버지가 초등생 아들을 폭행해 사망하자 시신을 훼손해 냉장고에 보관하다, 목사 부부가 중학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 미라 상태로 집에 방치하다, 엄마에게 맞아 죽은 7살 딸이 백골상태로 발견되다, 10개월 친딸에게 장난감을 던져 머리가 깨져 숨지게 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모성’이다. 예수의 몸은 잠든 아기처럼 성모 마리아의 무릎을 가로질러 뉘어져 있다. 모성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성이다. 성모 마리아는 모성의 원형이자 이상형으로 살아 있다.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을 뜻하는 모성은 자기희생의 형태를 띠지만 마냥 숭배받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아동학대가 극심해지는 지금, 우리에게 모성은 무엇일까.


#‘강하고 희생적인 모성상’은 만들어진 개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크면서 종종 언니 오빠들에게 지청구 아닌 지청구를 듣곤 했다. 나 때문에 하마터면 엄마가 죽을 뻔 했다고, 그래서 졸지에 자기들이 고아가 될 뻔 했다고 말이다. 마흔 다 된 엄마가 나를 낳다 죽기 직전이어서 동네사람들이 초상 치를 준비한다고 우리집에 다 모여들기까지 했단다. 큰언니. 오빠는 엄마가 죽는구나 싶어 무섭고 불안해서 울었다고 했다. 다행히 삼신할매의 보살핌이었는지 엄마는 모진 고통을 견디고 나를 낳고 살아났다. 어느날 엄마가 젖을 빨며 발장난하는 나를 이쁘다고 쓰다듬는 걸 옆에서 본 큰언니가 물었단다. “엄마, 애기 이뻐?”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인 모성상은 ‘강하고 희생적인 어머니’다. 역사적으로 강한 어머니의 모습은 단군신화의 웅녀나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에게서 찾을 수 있지만 여성이 아기를 낳아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모든 암컷이 그렇듯 생물학적으로 태생적인 본성이고 성스럽게 여겨진다. 그래서 아기를 낳지 않은 여성은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여성으로 간주된다. 아기를 낳아보지 않은 나로선 죽었다 깨나도 모를 이 모성은 과연 그렇게 위대한가.

오래 전, 아이가 하나 있던 친구가 오랫동안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을 생각중이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어느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기쁨에 달떠 있는게 아닌가. 임신을 했단다. 이혼을 하겠다는 친구가 임신했다고 행복에 겨워하다니. 내 생각엔 이혼을 결심한 마당에 덜컥 임신이 되면 당혹스러울텐데 말이다. 내가 모성애가 없는건가 싶어 골똘히 상념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아기를 낳은 친구는 몇 년 후 결국 남편과 헤어졌다. 그때 친구가 한 말이 있다. “아이가 예쁘긴 하지만 안 낳았더라면 지금 싱글맘으로서 덜 힘들었을 거야.”

일부 학자들은 ‘모성애’는 여성의 유전자에 있는 본능이 아니고 가부장제 하에서 발명된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자녀양육을 여자에게 떠넘기고자 하는 가부장적 욕망의 출구라는 얘기다.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모성 강요는 뿌리깊은 전통과 관련된다. 20여년전 이문열의 『선택』은 현대여성의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해 조선시대 가장 범절이 반듯한 양반가의 여성을 무덤에서 깨워냈다. 사회적 일을 모성보다 우선시한다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측의 공격이어서 사회적으로 논쟁이 치열했다.



#‘살림? 육아? 일-한국 슈퍼우먼의 비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보봐르는 어머니의 역할 수행을 ‘나르시시즘, 이타주의, 성실성, 해로운 신념, 헌신’이라고 규정하며 모성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다. 모성을 역사적 산물로 보고 여성들의 역할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로 정의했다. 여성들에게 오늘의 현실은 고달프기만 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말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이상적인 여성모델은 살림 잘하기, 아이 잘 키우기, 일하면서 외모가꾸기에 모두 성공하는 슈퍼우먼들을 양산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모성이데올로기는 출세 지향적이고 극단적으로 경쟁적인 어머니 노릇을 하게 한다. 지난 30년간의 급격한 산업화는 계층 상승의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학력과 학벌주의를 꼽는다.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과 사회참여는 교육을 통해 입신을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과 맞물려 어머니가 자녀양육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다. 자녀의 계층적 삶의 유지와 상승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아이에 유보될 때 여성들은 아이에게서 대리만족을 기대한다.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희생은 어머니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고, 그 고통은 아이에게도 전달되는 결과를 낳는다.

때마침 보건복지부는 지난 23일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주민인식조사’를 발표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맞벌이 부부중 아내가 자녀 양육에 쓰는 시간이 남편보다 2.6배나 많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출산과 더불어 부딪히는, 나는 사라지고 아이를 위한 ‘엄마’만 남았다는 고립과 절망감에 빠지는 이유 아닐까. 비약일 수 있겠지만,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서 아기 셋을 키우다 아기에게 장난감을 던져 죽게 한 홍성 세쌍둥이 엄마에게 감히 돌 던질 자 누구인가.

우난순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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