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을 상영하는 메가박스 |
2월24일 AM 08:30 조조상영부터 인파 몰려
대전 탄방동 메가박스에 속속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명한명 묻지 않아도 이들이 기다리는 영화가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오늘은 14년의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될 영화 '귀향' 개봉날.
개봉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의 실화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제작부터 환영받지 못했고, 힘들게 만들어졌으나 상업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 받았다. 세상으로 나온 영화를 환영해주는 곳 없어 무려 61,320일을 기다렸다. 오랜 겨울잠 끝에 깨어난 영화 귀향을 만날 수 있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대략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마주하려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감히 짐작도 못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나야 할까, 그 아픔에 나는 무어라 위로를 해야 하는 것일까.
2월24일 AM 9:10 1943년 아픈 추억속으로 한발
8시50분부터 상영관으로 입장하는 사람들. 느리고, 조용하게, 또 순식간에 빈 좌석이 사람들로 채워졌다.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뿐이 아니었다. 상영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침묵했다. 애써 말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최대한 덤덤하게, 그분들의 아픔을 내 가슴에 채울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는 일종의 행위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 귀향 스틸컷 |
순식간에 암전된 상영관. 이내 고요함 속에 우리는 1943년으로 돌아갔다.
14살 정민이 일본군에게 끌려간다. 목적지조차 모르는 소녀들을 실은 기차는 하염없이 달려간다. 이내 도착한 곳은 일본군인들이 머무는 전장의 한가운데.
1991년 출소한 전과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은경. 자신 앞에서 죽은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 받은 은경은 만신에게 맡겨지고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숨긴 채 살아온 영희(손숙)를 만나면서부터 기묘한 꿈을 꾸게 된다. 이후 은경은 무속인이 되어 1943년 위안부였던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귀향굿을 하게 된다.
영화의 주요매개체로 등장하는 괴불노리개와 흰나비. 정민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부적으로 성인이 된 영희가 괴불노리개를 만들며 살고 있다. 괴불노리개에게는 지니고 있으면 무탈 없이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녹아있는데, 어머니의 마음이자 영화를 보는 국민의 마음과도 일맥상통한다. 흰나비는 소녀들을 상징하는데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의 영혼을 싣고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2월24일 AM 11:20 제작부터 상영까지 국민의 힘으로
흰나비가 산으로 날아오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OST가 흐르며 7만5270명의 후원자 이름이 엔딩 크래딧으로 올라간다. 영화는 끝났지만 사람들이 도무지 일어나려하지 않는다. 나 또한 오래도록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릿한 마음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얼굴도 모르는 소녀들의 형상이 깊게 박혀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쏘여진 총성이 아직까지도 귓가에서 울리는 듯도 하다.
귀향은 24일 수요일 현재 할리우드 히어로물 ‘데드풀’을 제치고 27.2%로 예매율 1순위로 올랐다. 반신반의하며 스크린을 건 대형 멀티플렉스들도 예매율이 높아지자 하나둘 상영관을 늘려가고 있다.
▲영화 귀향 스틸컷. 괴불노리개. |
귀향은 영화 제작부터 개봉까지 국민의 힘없이는 불가능했다. 7만5270명의 후원자들이 앞서서 밀어주고 입소문으로 귀향의 존재감을 알린 국민들이 당겨주었기에 가능했다.
최영민 대전평화여성회 대표는 전화인터뷰를 통해 “무거운 사안이었지만 영화가 담담하게 풀어내줬다. 보는 것만으로 꽤 힘들었지만 제목처럼 영혼들이라도 돌아올 수 있게 그려낸 준 영화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최대표는 대전지역 ‘귀향’ 연장이나 재상영에 관해 묻자 “결정된 바는 없지만, 재상영 의지를 가지고 있다. 시민운동이 반드시 현장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큰 울림을 주기 때문에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귀향을 알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어 “귀향을 통해서 위안부 문제가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이 저지른 성폭행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여성 성폭력과 최근 아동학대 등 큰 틀로 볼 때 ‘인권’문제로 볼 수 있다. 약한 자들을 위한 인권회복에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추천함에 있어 한마디 덧붙이자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실과 의무감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아침부터 회사나 학교가 아닌 영화관으로 모여든 사람들. 상영관을 가득 메우며 오래도록 자리에 앉아있었던 그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인도한 발걸음도 진실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었을까.
상영시간에 맞춰 수고로이 영화관을 찾아왔고 많은 질문과 동시에 답을 얻게 되는 영화 귀향. 하얀나비가 무리를 이뤄 고향을 찾아오던 영화 속 장면처럼 상영관을 가득 채우는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살아계신 44분의 할머니들과 이미 세상을 떠난 그분들께 전해지리라 믿는다. 잊혀지지 않을 권리와 알아야할 권리를 믿는다면 더 늦기전에 귀향을 만나보길 바란다.
/이해미 기자
*대전충청 영화 ‘귀향’ 상영일자 참고하세요. CGV 대전/충청 ▲대전 24~28 ▲대전터미널 24~26 ▲서산 24~26 ▲세종 24~27 ▲유성노은 24 ▲유성온천 24~26 ▲천안펜타포트 24 ▲청주(서문) 24~26 ▲홍성 24~28 메가박스 대전/충청 ▲대전 24~28 ▲천안 24~28 ▲보령 24~26 ▲제천 24~26 ▲충주 24~25 ▲진천 24~25 롯데시네마 대전/충청 ▲대전(롯데백화점) 24~28 ▲대전둔산(월평동) 24~28 ▲서산 24,25,26,3/1 ▲서청주 24~28 ▲아산터미널 24~26 ▲청주 24~28 ▲청주충대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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