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권 목원대 총장 |
또 다른 정년을 코앞에 둔 어느 교수님도 정년 후의 목표로 이웃나라의 말을 하나 더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여러 번 가보기는 했지만, 거리가 가까운 것에 비해 이웃 나라를 너무 모른 채 살았다는 것이다. 한류바람이 처음 불었을 때 일본의 아줌마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어를 배우기까지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좀 극성스런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보는 일시적 현상이겠거니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것이다. 각 나라는 저마다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는데, 그걸 제대로 알고 우리의 것을 더욱 유연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데는 그 나라의 말을 아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외국어는 그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과목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조차 그걸 왜 배워야 하는지를 말해 주지도 않은 채 그저 냅다 가르치기만 했다. 외국어를 웬만큼 배워 보았자 써먹을 곳을 찾을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외국어로 된 재미있는 영화나 노래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즐기기 위한 기자재가 없었으니 서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그러니 당시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그저 먼 미래를 위한 투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투자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 때 배워둔 외국어를 통해서 유학도 할 수 있었고 평생의 직장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필자의 곁에서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외국어 습득을 위한 환경이 아주 달라졌다. 우리는 지금 외국어 하나를 알면 그 쓸모가 무궁무진한 시대에 살고 있다. 국내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물론이고 외국을 드나들 일도 자주 있다. 인터넷이 널리 퍼져있어서 외국어로 검색을 하거나 뉴스를 보는 일도 흔해졌다. 노래나 영화, 외국의 미니 시리즈, 심지어는 전자책을 내려 받는 일도 아주 흔하다. 영어처럼 널리 쓰이는 외국어를 잘 배워두면 세계의 거의 모든 좋은 것을 그 언어를 통해 접할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사업 중 5분의 4는 외국과의 교역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제 외국어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생존의 도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 공부가 생업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텔리그래프 지에 따르면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곧 그 언어를 통해서 다른 문화를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공부함으로써 타문화에 대한 관용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편견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자국 문화를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또한 외국어 공부는 수많은 글을 분석하는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공부하면 어떤 문제를 분석할 경우, 보다 치밀한 분석력을 갖추게 된다. 또한 외국어 공부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암기해야 하기 때문에 기억력이 놀라울 만큼 증진된다. 외국어를 공부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알츠하이머나 치매의 발병도 4년 정도 늦춰진다고 한다. 그밖에도 자국어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등 외국어 공부의 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생존의 도구를 넘어 사람 자체를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니 그것은 평생 꼭 해야 될 것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입학식이 있다. 신입생들은 각자 전공이 다르고 목표가 다를 테지만 4년 간 외국어를 한두 개는 꼭 배워두기를 권한다. 그것 때문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인격의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 했는데, 외국어를 배운 사람은 그런 집을 두 채나 갖는 것일 테니 말이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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