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영숙 대전월평초 교감 |
담임교사 시절의 일이다. 새로운 학교에 전근을 가서 6학년을 담임하게 됐다. 새 학기 첫 날, 우리 반에 준수(가명)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전에 담임을 했던 선생님이 나를 찾아 오셔서 준수가 가출도 자주하고, 등교한 후에도 중간에 가끔씩 사라진 일이 있었다며 생활지도에 참고하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서는 '하필이면 그런 학생이 우리 반이 되었을까?'라는 그릇된 생각으로 한숨이 나왔다. 첫 만남부터 그 학생에 대해서는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게 되었다. 반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는 '혹시 준수가 아닐까?'하고 의심을 하게 됐다.
준수도 그런 나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나를 볼 때마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대했고, 문제의 행동에도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실과시간이었다. 책꽂이를 만드는데 톱질을 하는 시간이었다. 반 학생들은 대부분 톱질이 처음이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준수는 능숙하게 톱질을 하고 있지 않은가! 순간 준수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반 친구들도 모두 감동의 눈빛을 보냈다.
“우리 준수는 톱질을 정말 잘 하는구나! 나중에 훌륭한 건축가가 되겠네”라고 했더니 처음 듣는 칭찬에 쑥스러워했다. 그 후론 신기할 정도로 준수의 장점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칭찬을 해 주었고, 반 친구들도 좋은 감정으로 대해 주었다. 준수의 행동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늘 지각이었는데 등교 시간도 점점 빨라지고 수학 시간에도 엎드려 자는 일이 없어졌다. 준수에게 실과 반장이라는 직함(?)도 생겼다. 학생과의 첫 만남에 있어서 절대로 편견을 갖고 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요즘 TV에서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복면가왕'이다. 이 프로그램은 복면을 쓰고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오직 '목소리'만으로 편견 없이 대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판정단은 단순히 노래만 듣고 평가를 하는데 눈과 귀를 가렸던 장막을 없애고 진짜 노래 실력만 보는 것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주인공이 승자보다 패자라는 것이다. 승자보다 매 대결 패자에게 주목하게 만드는데 패자의 얼굴을 공개하기 때문이다. 매 대결마다 복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할 수 있는 기회도 승자가 아니라 패자에게 주어진다. 그들이 왜 무대에 오르게 됐는지 그 사연도 오직 패자의 것만 들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프로그램은 보는 시청자 뿐 만 아니라 출연자들도 감동을 받는다. 출연자들에게는 가수가 아니어도 격려하는 무대, 외모에 가려져 저평가된 실력까지 되찾아주는 무대, 용기라는 굉장히 큰 무기를 선물해 주는 무대로 편견에 도전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3월, 새 학기가 시작된다.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새로운 친구, 새로운 담임선생님, 새로운 학생들과 첫 만남의 설렘으로 3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3월의 첫 만남에서 편견을 버린다면 참된 만남이 되어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편견을 깨뜨리는 것보다 원자핵을 깨는 편이 훨씬 쉽다'는 아인슈타인의 지적처럼 편견을 깨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H. D. 도로우는 '편견을 버린다는 것은 언제라도 결코 늦지 않다'고 했다. 새 학기에는 우리 모두 편견을 벗는 만남에 도전해 보았으면 한다. 소중한 인연을 위해!
한영숙 대전월평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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