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관에 1만여 점의 작품을 기증한 콜렉터 하정웅(76ㆍ사진)씨가 18일 오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하정웅컬렉션 기도의 미술 : 고요한 울림’전을 열며 대전에 온 하 씨는 자신의 ‘미술사랑 인생’에 대해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던 하 씨는 직접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재일동포로 느끼는 억압과 가난한 환경 때문에 화가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사업에 뛰어든 그는 도쿄올림픽 이후 호황을 맞았다. 25살부터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화가의 꿈 대신 그렇게 그림과 함께했다.
그가 가장 먼저 산 작품은 전화황 작가의 ‘미륵보살’이다. 일본인 작가의 작품을 사러 갔다가 바로 옆에 있던 이 그림과 만난 하 씨는 그날로 재일동포의 그림에 푹 빠졌다. 하 씨는 “미륵보살 그림이 너무 좋아서 그날 이후 재일동포의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하 씨가 구입해 각 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중에는 유명 작가들의 그림이 다수다. 하지만 하씨가 구입했을 당시엔 가난한 무명작가의 작품이 더 많았다. 하 씨는 “도쿄에서 열린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 전시회에 갔다가 작가들의 상황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작가들의 작품을 전부 한 점씩 사기도 했다”며 “그림이 유명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고 우리나라 작가들을 도와주기 위한 구매였다”고 말했다.
하 씨는 작가 이우환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우연히 서점에서 본 그의 그림이 좋아서 작품집 500권을 사들여 주변 사람들과 나눴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80년대 중반 도쿄에서 열린 세계미술인국제회의에 콜렉터로 초청받은 하 씨는 그 자리서 이 작가를 처음 만났다.
하 씨는 “이 작가가 유럽 순회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데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경비에 200엔을 더 보태 지원했었다”며 “이후 이 작가가 작품 13점을 줬는데 그 작품이 지금 그의 대표작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인이 예술인을 후원하는 ‘메세나’의 시초였던 셈이다.
하 씨는 18일 오후 시작한 ‘하정웅컬렉션 기도의 미술 : 고요한 울림’ 전을 앞두고 이번 “전시작가 중에는 돌아가신 분도 있지만 그림은 살아 있어서 대화할 수 있고, 그 추억을 같이 할 수 있는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70년대 일본 ‘모노하’운동을 이끈 이우환과 새로운 조형공간을 실험한 곽인식, 정체성을 원초인 화려한 점과 선을 통해 확인한 손아유와 70년대 한국미술을 견인한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의 작품 70여 점을 선보인다. 오는 5월 29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 2층 중앙홀에서 진행된다. /임효인 기자 h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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