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우 바이핸커피 대표. |
그 시절 우리나라의 다방은 거리의 응접실도 되고, 사무실, 휴게실도 되고, 데이트 장소도 되는 등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묘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 말 미국 공보처는 우리나라 다방의 속성을 정리하여 '한국의 사교장'이라는 12장짜리 보고서를 내기도 합니다.
1970년대는 음악다방의 시대입니다. 또한 1970년대 주요 건물 앞의 약속 장소는 커피 없는 야외다방 역할을 하였습니다. 70년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출입이 자유로워진 곳이 술집과 다방이었습니다. 커피는 대부분 성인이 된 20살부터 마셨고 그때부터 우리는 낭만을 찾았습니다. '장계현'의 <나의 20년> 중 “동녘에 해뜰 때 어머님 날 낳으시고… 커피를 알았고 낭만을 찾던 20살 시절에 나는 사랑했네.”
1970년대 '오비스캐빈'과 이종환의 '쉘부르' 같은 전문 음악다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장발이 유행하던 시절에 뒷주머니에 도끼빗을 꽂고 다니며 신청곡을 받아 LP 레코드판을 찾아 음악을 들려주던 음악 다방 DJ. 우리나라 DJ 1호는 '최동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 이종환, 김광한, 황인용, 김기덕 등 기라성 같은 DJ들의 시대입니다.
인기 DJ들의 시대인 70년대 후반 가수 윤시내의 노래 '열애'로 유명한 'DJ 배경모'의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후렴구 “이 생명 다 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가슴속 불꽃을 피우리라”. 배경모는 1970년대 부산지역 청취자들을 사로잡은 '별이 빛나는 밤에'와 '별들의 속삭임'을 진행한 유망한 DJ이자 연출가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1978)한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 쓴 시에 최종혁 작곡가가 곡을 붙여 유명해진 곡입니다. DJ 배경모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1982년 영화로도 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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