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인생은 차선(次善)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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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광장] 인생은 차선(次善)의 연속이다

  • 승인 2016-02-16 14:03
  • 신문게재 2016-02-17 23면
  •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학창 시절이던 70년대 말, 예산 박외과의 박호규 원장은 너무 멋있는 사람이었다. 나이도 한두 살 많은 데다 인물 좋지, 술 잘 먹지, 친구 많지, 거기에 공부까지 잘 하고 리더십마저 출중해서 우리 스터디 그룹의 큰형님이었다.

한 친구가 잘 풀리는 일이 있었는데 훌륭한 아버지 영향력 덕분이라는 뒷말이 돌았다. 다른 친구가 '누구는 아버지 덕에 잘 나가고…' 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박선배는 정색을 하고 그 친구를 나무랐다. “아버지 잘 만난 것도 능력이다. 네가 그런 능력이 없다면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인데, 그 친구를 나쁘게 말한다면 친구로서 자격이 없다.”

불만을 얘기하던 친구도 의사로서 크게 성공해서 서울에서도 큰 대학병원의 병원장을 지냈다. 그 친구는 어째서 아버지 덕 본 친구를 비난했을까? 나는 젊은이의 '불안'이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훌륭한 의사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기쁜 마음으로 친구의 행운을 축복해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불확실한 미래가 친구의 '작은 성공'을 질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젊은이가 겪는 가장 큰 고민은 '알 수 없는 미래'다. 둘러보면 성공한 사람들만 보이는 것 같고, '나'는 그럴 자신이 없으니 마음이 불안하다. 내를 건널 때 징검다리가 하나씩 놓여 있는 것이 보이면 하나씩 돌을 짚어 나갈 수 있지만 그 돌이 보이지 않으면 답답한 것과 같다.

그렇지만 인생의 큰 강은 멀리 내다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좋지 않다. 누구나 각자의 눈앞에 놓인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야 한다. 앞에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 건너기 쉬운 매끈한 돌이 놓여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비가 올 수도 있고,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 그저 최선을 다 해 눈앞의 돌을 하나씩 짚으며 앞으로 나갈 뿐이다. 어떤 이에게는 고속도로가 깔려 있을 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는 결국 징검다리를 찾지 못하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이런 일이 있어 왔지만 과거와 지금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스스로의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언제나 인생은 '새옹지마'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이, 그리고 넓게 퍼져 있어서 쉽게 자신의 미래를 예단하게 되었다. 적어도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아버지와 선배들 사는 모습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 아니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되고 싶은 대로 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 보기에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 열심히 노력할 수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내 인생이고, 남들이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직업도 나에게 소중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싶다.

살다 보니 인생은 차선(次善)이었다. 최선을 추구했지만 결국 차선을 선택하는 과정이 반복되었고, 스스로 이 선택에 만족을 느끼는지, 혹은 불만인지는 개인의 문제다.

누구나 박호규 선배는 세브란스병원의 외과교수가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예산 박외과 원장이 되었다. 당대의 유명한 의사인 부친께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바람에 아버지 권유로 병원을 물려받았고, 개업의사로 성공했다. 대학교수가 더 나은 인생인가? 아니면 성공한 개업의사인가?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가? 박선배는 차선을 선택했지만 결국 최선이 된 경우라고 나는 생각한다. 차선의 선택도 결국은 얼마든지 최선이 될 수 있다.

어른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급행열차를 기다리기보다 눈앞의 완행열차라도 승차하라고 충고하지만, 일단 완행열차를 타면 죽을 때까지 천천히 갈 수밖에 없기에 '기약 없더라도 급행을 기다린다'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젊은이들의 고뇌에 공감한다. 그래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완행이라도 일단 탑승한 뒤에 더욱 노력해서 더 빨리 갈 수도 있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완행이든 급행이든 내 인생이기에 '지금' 그리고 '내가' 탄 열차가 중요한 것이다.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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