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미대 가는 길, 장금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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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미대 가는 길, 장금만 화백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6-02-04 14:20
  • 신문게재 2016-02-05 23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세 해 동안 정들었던 세간을 이웃과 나누었다. 주인에게 이별 인사를 고했다. 집을 나서려 대문을 안으로 잡아당겼다. 밖에서도 대문을 밀치고 중년의 사내가 들어섰다. 아버지였다. 어디 가느냐. 취직하러 서울에 갑니다. 가자. 어디를요. 등록해야지. 등록 마지막 날 늦은 오후였다.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고 네 시간 이상 달려온 아버지였다. 장금만이 한 발 빨랐거나 아버지가 한 걸음 늦었더라면 그는 화백이 되지 못했을 터였다.

대학 등록 마감이 다가왔다. 고향에서는 아무 기별이 없었다. 다급해 진 장금만은 집으로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전 날 저녁 여섯시였다. 무릎을 꿇고 간청 드렸다. 등록만 해주시면, 혼자 힘으로 대학을 마치겠다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버지는 돌아앉으셨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형제가 많았다. 새벽 세 시, 돌아앉으신 아버지는 여전히 담배만 피우셨다. 겨울바람이 매서운 이십 리 새벽길을 걸어서 장금만은 첫차를 탔다. 대학에 가려던 뜻이 접혔다. 공업고를 졸업하면 골라서 취업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취업을 한 친구와 선배들이 당장 다음 날부터 출근할 수 있다며 서울로 그를 불렀다. 그렇게 눈물의 취직을 하러 서울 길을 나섰다가 대문에서 아버지를 만난 터였다. 장금만은 공업회사 기능공 대신 미술대학 학생이 되었다.

장금만은 그림을 잘 그렸다. 크레용을 처음 쥐었던 초등학교 신입생시절부터 그의 그림은 친구들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과묵한 그는 공부도 잘했다. 그러나 성적이 뛰어나고 가난한 시골 학생들의 상당수가 그랬듯, 장금만도 공업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적성에 맞지 않은 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열일곱 살의 꿈과 회한을 그림으로 옮기며 시간을 축냈다. 자퇴를 신청했다. 장금만의 품성과 역량을 아끼던 담임선생님의 간곡한 만류가 이어졌다. 장금만은 기계부품을 실습하는 대신 기계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이 그에겐 실습이었다.

장금만이 3학년이던 5월, 미술대학에 다니던 선배가 그에게 미대 진학을 권했다. 장금만은 웃었다. 입시를 위해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도, 다닐 학원비도 그에겐 없었다. 선배는 시쳇말로 재능기부를 하겠다며 자기 화실로 그를 초대했다. 아그파가 석고상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던 장금만은 고3 늦은 봄에 석고상 데생을 시작했다. 장금만은 그 해에 미술대학에 합격했다. 꽃과 벌과 음악을 다루는 거장 장금만 화백의 미대 가는 길은 그의 표현대로 슬픈 사연이었다.

열심히 그림만 그리던 장금만이 세상을 좀 더 깊게 들여다 볼 계기가 있었다. 군을 제대하고 석 달간 막다른 겨울 골목길 포장마차를 했다. 신산한 삶의 강을 휘감아 돌아온 낡은 술집의 여자들과 닳아 부서진 지게의 짐꾼들이 한 잔 술을 마시러 왔다. 찢기고 빼앗기고 내동댕이쳐진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의 포장마차에서 술에 섞여 한이 되었다. 짐꾼들의 말도 술에 취해 곡으로 흘렀다. 장금만의 포장마차는 그들의 한과 곡이 삭연히 솟고 잦아지는 공연 마당이었다. 장금만은 그들 공연의 잘 듣는 관객이자 추임새 넣는 보조 출연자였다. 공연자들에게 술과 안주가 주어졌다. 장금만은 돈을 벌지 못했다. 그러나 억만금 같은 낮은 자리의 살가운 교훈을 벌었다. 복학을 하려고 포장마차를 뜯던 날, 여자와 짐꾼들이 달려와 슬피 울며 꾸깃꾸깃 접힌 천 원짜리 지폐를 한두 장씩 내 놓았다. 복학한 장금만은 부정하고 불의한 대학운영을 바로잡는 일을 외면하지 않았다. 교육자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것도 그 때였다. 그리고 큰 도회의 중학교 미술 선생이 되었다. 서울 인사동의 초대전을 비롯해 세 차례의 전시회도 열었다. 지금은 교사들의 연수와 교육을 관장하는 장학사로 일하고 있다.

대학의 등록금을 납입할 때다. 세상은 청년들의 취업이 어렵다며 아우성이다. 한편에선, 등골이 휘어지게 일해도 등록금을 만들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십년 전 장금만 화백처럼 부모의 그 눈물 앞에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등록을 미루는 청년들의 좌절도 넘쳐난다. 비싸게 등록금을 거두어 교직원의 후한 임금으로 소모하거나, 교육비에 투자하지 않고 적립금으로 쌓아두는 따위의 대학 행위는 그 자체로 시대에 짓는 죄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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