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미옥 금산 제원중 교사 |
그건 다름 아닌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것으로 홍화정이라는 일러스트작가가 쓴 책 속 한 부분 때문이다.
이 집요한 생각의 시작은 손 글씨(캘리그라피)쓰기에 재미 붙인 내게 며칠 전 딸아이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라며 써 달라고 한 것에서 시작된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 된 내 교직 생활이 지금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문구 앞에 그것도 '평생하기로 마음먹었다'를 더해 잠시 주춤거리는 이유는 뭘까?
'엄마도 그랬어?'라는 무심코 던진 딸아이의 말 앞에서 말이다.
하고 싶었던 일. 1983년, 중학교 3학년때 국어선생님. 칠판에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시 한 편을 적으시고는 눈 감고 낭송하시던 나의 선생님.
황순원의 '소나기'를 배우며 눈물짓게 만드셨던 선생님의 그 따뜻한 감성.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고 닮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평생 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제나 그렇듯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2월말까지 학교는, 그리고 교사들은 늘 술렁인다.
전보내신, 명예퇴직, 정년퇴직 등의 이야기가 만남의 주요 화제가 되고, 특히 명예퇴직과 정년퇴직을 두고는 저마다의 철학이 묻어나는 이야기들로 꽃을 피운다.
몇 년 전만 해도 우스갯소리로 '연금만 나오면 딱 그만 둔다'라는 상황이 내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연금 개시일이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해마다 다른 빛깔로 다가왔던 아이들과 눈을 마주할수록 나의 생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정년의 아름다움'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기뻐 눈물 날 것 같은 기분. 해가 바뀌었느니 작년 3월 2일이다.
학교를 옮기고 부임 인사를 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교실 두 칸 정도를 터서 만든 다목적실에 모인 재학생 41명과 입학생 19명.
그러니까 전교생이 60명이 전부인 아주 작은 학교였고, 난 그 아이들의 국어선생님으로 부임인사를 마쳤다.
삼십 년도 더 지난 그 때 그 시절의 국어선생님처럼 나를 닮아 꿈을 키우고 싶은 아이가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할 거라는 생각에 할 일이 많아졌다.
해마다 국어선생님이 바뀌었던 아이들.
그래서 더 많이 애착이 갔었을까? 아니면 내 진심이 통했을까?
3학년 아이 중 한 아이가 건넨 말 한마디가 1년을 거뜬히 살게 했는지 모른다.
“선생님, 우리 반 평균이 얼마예요?” “평균? 62점!” “와! 진짜요?” “응, 선생님 자리 깔아야겠다. 예상평균 적중 했는걸! 근데 왜?” “선생님은 행복하신 거예요. 40점을 넘긴 적이 없었거든요.”
듣기에 따라서는 발칙할 수도 있겠지만, “국어 공부가 재밌어요”라는 말을 쑥스러워 돌려말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이제는 딸아이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평생 하기로 마음먹었다”라고.
마구 흩어진 추억이 기뻐 눈물 날 것 같은 날들로 켜켜이 쌓여갈 때까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양미옥 금산 제원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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