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부산 BIFF광장·자갈치시장
난 있잖아, 부산을 사랑하는 데 있어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야. 부산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늘 새로운 도시야. 여행을 앞두면 마치 내가 홀로서기를 하는 기분이야. 의지할 데라곤 오로지 나 자신밖에 없는 도전적인 일에 뛰어드는 느낌이랄까. 여행중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깨닫는 건 '나도 할수 있구나'였어. 헤밍웨이는 최고의 모험가였어. 아프리카에서 사자사냥을, 스페인에서 투우 시합을, 쿠바의 아바나에서 낚시도 하고 종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잖아. 헤밍웨이의 문학적 성과는 지칠줄 모르는 모험정신의 산물 아닐까. 이번 부산여행은 한마디로 피한(避寒) 가는거야. 난 추운 건 딱 질색이거든. 돈만 있으면 남쪽나라에서 물리도록 열대과일을 먹으며 시원한 야자수 그늘 아래서 낮잠도 늘어지게 자는, 한량처럼 사는 게 내 꿈이야.
부산은 볼거리도 많지만 맛있는 것도 너무 많아. 생각하면 침이 막 고여. 새벽기차타고 부산에 갔는데 웬 열! 여기도 시베리아 벌판인데? 이번에 부산은 70년만의 강추위래. 춥고 배고파서 서면돼지국밥 골목으로 내달렸어. 난 돼지국밥 먹으러 부산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서면돼지국밥골목은 6.25 전쟁 중 생긴 곳으로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려서인지 애틋함이 더해. 그런데 이번엔 한 어르신하고 먹었어. 재작년 11월, 길을 물은 인연으로 그 어르신이 국밥을 사주셔서 이번엔 내가 대접하려고. 어르신은 내손을 반갑게 잡으시며 생각도 못했다며 놀라시는 눈치였어. 근데 국밥을 드시며 생년월일을 묻더니 “장사해봐. 뭔 장사든 다 괜찮아” 하시더라고. 장사를? ㅋㅋ
누가 그랬듯이 부산은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들이 도시안에 공존한다는 게 큰 매력이야. '한국 제 2의 도시이자 제 1의 무역항' 부산은 유럽의 어느 휴양지 못지않은 바다와 고층빌딩이 어우러진 해운대와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남포동골목과 자갈치시장,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가 공존하는 팔색조같은 도시란 말이지. 15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선 남포동 국제시장은 미로같은 곳으로 사람 혼을 쏙 빼논다니까. 알록달록 울긋불긋 보물창고가 따로 없어. 워낙 독특한 시장이라 외국인들도 많아. 패션감각은 또 어떻고. BIFF광장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와! 샛노란 바지에 파랑·빨강·회색 줄무늬 티에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르고 빵모자 쓴 할아버지가 햄버거 먹으며 뭘 메모하시는거 있지.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멋쟁이 노신사의 파격은 정말 신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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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광장 바닥엔 영화인들의 손도장도 찍혀 있어. 허우샤오시엔, 쟌 모로, 제레미 아이언스, 신상옥, 이만희, 다리오 아르젠토…. 과연 국제적 영화도시라는 게 실감 나. 제레미 아이언스처럼 수트가 어울리는 남자가 있을까. 마르고 큰 키에 영국 귀족의 풍모가 느껴껴지는 그가 나온 '데미지'가 생각난다. 20대 후반에 본 영환데 꽤 충격적이었어. 아들의 여자와 겉잡을 수 없는 욕망에 빠져 위험한 사랑에 기꺼이 내던지는 그가 이해되면서도 몸서리쳐지는 영화였어. 추운 날씨인데도 BIFF광장 먹거리노점은 발디딜 틈이 없더라. 그리고 거칠고 생생한 부산 사투리를 맛보려면 자갈치시장에 가야 해. “싱싱한 대구 사가이소. 싸게 드릴게예.” “고래고기 있심더. 아이고, 구경만 할라믄 빨리 지나가이소.”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입이 딱 벌어진 내게 수협 직원 이종구씨가 얘기해줬어. “대목 준비할라꼬 이리 사람들이 많은 깁니더. 자갈치 아지매들 대단합니더. 밤 11시에 경매하면 2시에 끝난후 3시간 자고 새벽 5시에 나와 장사합니더.”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거칠고 억센 손으로 얼음덩이 같은 생선을 다듬는 아지매들 앞에서 난 부끄럽고 숙연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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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시장 인근 후미진 골목에 고등어구이 백반집이 있어. 연탄 화덕에서 구워진 고등어 두 토막과 시래기 된장국, 몇 개의 밑반찬이 의외로 싸고 맛있어 손님들이 끊이지 않아. 식탁이 몇 개밖에 안돼 낯선 이와 겸상으로 먹는데 꽤 재밌어. “친구가 싸고 맛있는 집이 있다케서 왔어예.” 중년부부도 흡족해 하며 맛있게 먹던데. 인심도 후해. 시래기국을 좀 더 달랬더니 넘치게 한그릇 주는거야. “아이고, 날씨가 와이리 춥노. 이 누른밥도 드이소.” 뜨끈하고 구수한 숭늉 한 대접씩 다 돌리는 푸근한 인정에 언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어깨를 부딪혀가며 밥 한술갈 입에 넣는 그 순간은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기에 모자람이 없었어. 그동안 익숙함이라는 안락함을 선택함으로써 나는 또 어떤 것들을 놓쳤던 걸까. 어떠한 편견도, 가식도 없는 나와 그들의 우연한 만남도 알고보면 예정된 인연 아니었을까. 여행의 최고의 진국은 인정과 우정이 버무려진 용광로 속에 푹 빠져버리는 거야.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가는길=대전역에서 부산까지 KTX가 자주 있다. 새벽 첫차는 6시 19분이고 1시간 40분 소요된다. 요금은 3만6200원. 무궁화호는 새벽 첫차가 0시 23·47분이다. 3시간 40분 소요. 요금은 1만7600원이다.
▲먹거리=맛있는 음식이 무궁무진하다. 돼지국밥, 밀면, 싱싱한 생선과 회, 생선구이, BIFF광장 씨앗호떡 등 재밌고 생소한 군것질 거리가 있다. 해운대엔 복국과 대구탕도 유명하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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