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 남성이 3년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공원 정자. 이불로 쓰이는 듯한 판자가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으려는 듯 벽돌로 고정돼 있다. |
서구청과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 노숙인은 2014년 초부터 탄방동 로데오타운 뒤편에 있는 작은 공원 정자 위에 판자를 깔고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밤에 홀연히 나타나 깔아놓은 판자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판자를 정자 한 가운데 가지런히 정리한 후 자리를 뜬다.
나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키는 170cm 정도로 호리호리한 체격이다. 주민들은 정신 질환을 앓거나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이진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신발이 깨끗하고 옷차림도 단정해 전혀 노숙인 같지 않다는 게 대다수 주민들의 반응이다.
인근 모텔 주인 임모(64)씨는 “노숙인이 정자에서 잠을 잔 지 올해로 3년째인데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거나 자리를 피해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다”며 “옷이나 신발은 주웠다고 보기엔 너무 깔끔한데다 생김새도 말끔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주민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말을 건네도 무시한다고 한다. 다만 정자에 과자나 빵 등의 간식을 갖다 놓으면 알아서 먹는다고 한다. 관할인 서구청도 현장 순찰 중 2년 전 그를 발견하고 노숙인 시설입소를 권유했지만 아예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탄방동주민센터와 노숙인지원센터에서도 꾸준히 설득을 시도하고 있으나 워낙 완강해 발길을 번번이 돌리기 일쑤다.
기자가 26~27일 현장을 찾았지만 그는 자리에 없었다. 정자 중앙의 정리된 판자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듯 판자 곳곳에 벽돌이 놓아져 있었다.
판자 안쪽엔 빈 음료수통과 생수통이 있었다. 테이프로 이어붙인 판자 4~5장은 이불 용도로 보였다. 정자 뒤쪽 배전함 안쪽으로는 신발 4개와 여러 박스 등이 정리돼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노숙인이 정자에 시민들이 접근하는 것조차 막아 동네 이미지에 타격이 크다고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가을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줘 주변 건물이 비둘기 배설물 테러를 당한다고도 했다. 주차관리인 지모(63)씨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가 노숙을 하는 것은 안타까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주변 영화관, 찜질방, 음식점을 찾는 손님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혼자만 사용해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혹시나 상권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서구는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노숙인의 마음을 여는 한편 노숙인 지원시설 입소를 유도할 계획이다.
서구 관계자는 “2년 전부터 노숙인지원시설에 입소할 것을 권유하고 사정을 듣기 위해 노력했지만 입을 열지 않아 어려움이 크다”며 “일단 겨울인 만큼 저체온증이나 동상 등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고 빠른 시일 내 노숙인시설에 입소해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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