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추워도 이렇게 이상하게 추운 것은 기상 이변이고, 이건 우리가 환경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훼손한 까닭이라고 반성하고 있는 중에 마침 틀어놓은 TV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와 필자의 주의를 끌었다. 기생충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의 특강이었다.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사는 기생충은 숙주가 죽지 않아야 자기도 살기 때문에 숙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의 형태를 유지하는데, 인간은 욕심껏 자기 위주로 편하게 살려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훼손하고 파괴한다는 것이다. 환경이 파괴되면 인간의 삶도 파괴되는 것이니 기생충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TV 강의는 매우 흥미롭게 이어졌다. 이런 저런 기생충 사진을 보여주며, '기생(寄生)의 삶'을 설명하고 자신의 삶과 우리네 삶을 적당히 엮어 넣은 강의는 '만족'을 화두로 던지며 끝이 났다. 적당히 만족하며 함께 살자는 메시지로 이해했다. 외모 탓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강사는 드러나지 않은 채 오랜 시간 내공을 다져온 사람답게 청중을 쥐락펴락하는 예능적 매력(?)을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시청하는 사람까지도 온통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런 반전이, 이런 떠오름이 우리를 살 맛 나게 하지 않는가? 강의를 듣는 내내 기생충에 대한 관점을 다르게 하는 지식도 좋았지만, 그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어른들에게도 크게 사랑받지 못하며, 제기차기로 외로움을 견디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온몸으로 보여주는 역전의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기생충을 의인화해 별로 많이 먹지도 않고, 투쟁적으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그저 인체에 몸을 붙이고 사는 기생(寄生)살이를 좀 봐주자고 강사는 우리를 설득하고 있었다. 기생충이 주인공이 되어 갈등을 겪으며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구성을 하니 말하자면 간단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그래서 알아듣기 쉽고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크게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숙주에게 붙어 지내는 '기생(寄生)의 삶', 그 마디마디에서 어린 소년의 마음이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면 필자의 지나친 정서적 시청일까?
인생살이에도 기생(寄生) 현상이 있다. 새 학기를 준비하며 지난 학기 학생들의 요청이나 제안을 반영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실습조 편성에 대한 불만이 제법 있다. 일부 학생 때문에 실습조 전체 평가가 달라지니까 조 편성을 잘 해달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좀 떨어지거나 묻어가는 학생이 있어도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였지만 요즘 학생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예전보다 심성이 각박해진 이유도 있겠으나 상대적 성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작은 점수에도 평점 차이가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모르는 게 있다. 기생(寄生)살이를 하는 학생 때문에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돋보인다는 것을, 그 학생을 봐주다보니 부족함을 지닌 채 견디는 융통성을 배우게 되고, 이로 인해 보다 자연스러워지는 보너스를 받는다는 것을. 때로는 그 경험을 통해 남달리 말할 수 있는 이야기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산다는 것은 어차피 공생(共生)이다. 때로는 죽은 사물과도 공생한다. 서로 상생하기도 하고, 기생하기도 하며 지낸다. 누군가 내게 기대어 살고, 나는 또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게 자연의 현상이다. 이런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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