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셋 째 주, 극장가의 주인이 바뀌었다. 한 달 동안 1위 자리를 지킨 '히말라야'는 예매율 10%를 웃돌며 3위로 내려갔고 1위 자리에는 예매율 30%대 초반을 기록하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올랐다. 아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자신을 죽음의 나락에 버리고 떠난 자에게 복수를 꿈꾼 디카프리오(휴 글래스 역)의 놀라운 생명력이 박스오피스에서도 통했다.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21일 오전 기준 98만 누적 관객을 기록했다. 박스오피스 2위는 유연석과 문채원 주연 '그날의 분위기'다. 예매율 15%대로 누적관객수 43만 명을 기록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주엔 임시완의 첫 스크린 주연작 '오빠생각'과 '스티브 잡스', '빅쇼트',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이 박스오피스를 찾았다.
세상을 바꾼 세번의 프레젠테이션
'혁신', '열정'이라는 두 단어는 그를 떠올리게 한다. 검은 목폴라티에 청바지, 회색 운동화의 그가 무대에 올라 세상을 3번 바꾼다. 40분의 프레젠테이션은 그의 '열정'이 만든 '혁신'이다. 영화 '스티브 잡스'는 아카데미 수상 감독 대니 보일과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실화를 풀어내는 솜씨를 인정받은 각본가 아론 소킨이 뭉쳤다.
“넌 누구야? 뭐 하는 사람인데?”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의 영화 속 대사는 '스티브 잡스'를 관통한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 대니 보일 감독은 잡스의 인생, 그리고 컴퓨터의 역사에서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세 번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골라 3막의 연극처럼 구성했다.
영화는 막과 막 사이, 시대를 반영한 배경음악과 애플에 관한 당시 뉴스 영상, 당대 대중문화 아이콘 등을 통해 보수적이었던 1970, 80년대를 지나 개인주의의 시대인 1990년대로 향한 미국의 공기를 표현한다. 감독은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1984년은 16mm, 88년은 35mm, 98년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는 세밀함을 보였다.
각본가 에론 소킨은 재현의 강박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스티브 잡스'를 써내려갔다. 인간 '스티브'에 주목하는 대신 '잡스'라는 상징이 우리에게 던져준 것들, 그를 둘러싼 구설들, 대립되는 가치들을 수집해 압축적으로 구성하는 데 힘을 쏟는다. 스티브 잡스를 연기하는 마이클 패스벤더만은 이러한 것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밀하게 선보인다. 영화는 2016년 골든글로브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20조 판돈' 세계경제 건 짜릿한 도박
'빅쇼트'는 가치가 하락하는 쪽에 투자하는 것을 말하는 주식 용어다. 영화 '빅쇼트'는 미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 한다.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가치가 하락하는 쪽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월스트리트를 물 먹이며 20조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들인 괴짜 천재 4명의 실제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머니볼', '블라인드 사이드'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의 책 '빅숏'을 원작으로 한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 경제를 초토화시킨 최악의 금융재앙사태를 다루며 그 이유와 수많은 금융전문가들이 사건에 대해 어떤 조치도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추적한다. '영화 '빅쇼트'는 몇 차례의 각색상을 수상하며 원작을 바탕으로 완성한 완벽한 스토리 라인을 인정받았다.
영화의 특성상 경제 전문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아담 맥케이 감독은 전문 용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안으로 관객들에게 직접 전문 용어를 설명해 줄 유명인들을 카메오로 섭외했다. 이들은 전문 용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거품 목욕 장면, 해산물 스튜 요리 장면, 카지노 블랙잭 게임에 참여하는 장면 등 경제와는 상관없는 짧지만 강렬한 에피소드를 삽입해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재미를 더한다.
영화는 단순히 천재 4명의 짜릿한 도박을 넘어서 그 이상의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엄청난 경제위기를 겪은 미국 월스트리트 은행들의 태도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들은 바뀌지 않았다. 영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형을 시사하며 '자기만의 빅쇼트를 준비하라'고 말하고 있다.
60년대 어린이 합창단 따뜻한 하모니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동료를 잃은 육군 소위 한상렬(임시완)은 부모를 잃고 홀려 남겨진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에 마음을 연 그는 자원봉사자 선생님 박주미(고아성)와 아이들에게 합창을 가르치며 희망과 웃음을 찾아나간다.
영화 '오빠생각'은 한국전쟁 당시 격전의 전장과 군 병원에서 위문공연으로 시작해 휴전 직후 미국 전역, 60년대에는 일본, 동남아, 유럽까지 순회공연을 이어가며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었던 어린이 합창단의 이야기다. 아이들을 위하는 한상렬의 따뜻한 마음과 노래를 통해 비로소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아이들의 변화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이한 감독과 이재진 음악감독은 시대별 합창과 가곡, 동요를 비롯해 작곡가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찾아가며 실제 1950년대에 많이 불린 노래들 중 향수, 고향, 그리움의 감정을 담아낸 곡 중심으로 선정해 나갔다. 또 직접 오디션을 통해 합창단원 30명을 엄선해 4개월간 합창교육을 했다.
영화는 1950년대를 규모감 있는 오픈세트와 영화 미술로 재현해냈다. 이한 감독은 철저한 자료조사와 사전준비를 거쳐 당시 시대상을 담아냈다. 눈과 귀를 동시에 자극하는 영화 '오빠생각'은 영화 '변호인'과 드라마 '미생'의 히어로 임시완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다.
40년차 노부부의 특별한 해프닝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은퇴한 교사 루스(다이안 키튼)와 화가 알렉스(모건 프리먼) 부부. 둘은 40년간 살아온 아파트를 팔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 조카 릴리의 도움으로 오픈하우스를 준비한다. 릴리의 도움으로 루스와 알렉스의 집은 근사해진다. 하지만 오픈하우스를 하루 앞두고 뉴욕의 브루클린과 맨하튼을 잇는 윌리엄스버그 다리에서 테러를 의심케 하는 사고가 발생해 평소와 다른 주말을 보내게 되는 이야기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이 연출했다. 사실적이고 편안한 연출에 초점을 둔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은 특별할 것 없는 40년 차 노부부에게 주말 동안 일어나는 해프닝을 통해 캐릭터가 갖는 감정선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완성도 높은 로맨스를 선보였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주연상 다이안 키튼과 남우조연상 모건 프리먼의 연기도 관전 포인트다. 처음 연기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까순남(까칠하지만 순정적인 남자)' 알렉스와 '마섹녀(마음이 섹시한 여자)' 루스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영화는 2009년 출간된 질 시멘트의 '영웅적 판단(Heroic Measures)'을 원작으로 한다. 잘 짜인 플롯과 감동의 스토리는 오프라 윈프리가 '올 여름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았다. 노부부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그린 이 영화는 기존 할라우드의 웅장한 스토리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뉴욕이란 도시의 진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임효인 기자 h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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