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에 동시집 출간 송근영 작가… 童心 간직한 '아흔 어린이'

  • 문화
  • 문화/출판

92세에 동시집 출간 송근영 작가… 童心 간직한 '아흔 어린이'

초등학교 교사에서 시인으로 '인생 2막 30년' 항상 책·신문 가까이…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 끄적

  • 승인 2016-01-14 14:25
  • 신문게재 2016-01-15 11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코가 큰 어린이는 코가 커서 귀엽고

눈이 작은 어린이는 눈이 작아서 귀엽다


이가 빠진 어린이는 이가 빠져서 예쁘고

왼쪽 오른쪽 신발을 바꿔 신는 어린이는 신기해서 예쁘다


모두모두 다르게 크는 어린이

누가 누가 잘하나 기죽이지 말고

밝게 곧게 무럭무럭 자라게 하자

-첫 동시집 까치나무 중 '다르게 크는 어린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흔두 살의 노인이 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23년을 지낸 그는 65세에 정년퇴임을 하면서 생의 첫 번째 동시집 '까치나무'를 세상에 냈다.

교육자에서 시인 송근영(92)으로 인생 제2막을 연 지 30여년이 흘렀다. 그의 동시들은 그가 평생을 함께한 아이들과 많이 닮아있다. 작품은 곧 그 작가요, 시인 역시 아이들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특히 동시를 읽을 때가 그러했다.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하고 조르듯, 어린아이처럼 시를 읊는다.

1925년 혼란스런 때 태어난 그는 어느새 구순을 넘긴 노인이 됐다. 검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희고 눈도 귀도 점점 침침해져 가지만 그의 마음 한켠엔 여전히 '어린이'의 마음이 존재한다. 그 마음이 새해 벽두 또 한 권의 동시집으로 세상과 만났다.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2016)가 그것이다.

13일 오전 10시 30분께 대전 대덕구 오정동에 위치한 시인의 집을 찾았다. 지은 지 20년은 돼 보이는 3층짜리 연립주택 2층이 그의 집이다. 구순이 넘은 시인은 외출할 때마다 계단을 오르내린다. 시인의 집 현관문 앞에는 지팡이 두 개가 벽에 기대 있었다.

현관을 두드리자 느릿느릿 송 시인이 손님을 맞이했다. 며칠 새 영하로 떨어진 기온 때문에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시인은 먼저 일기장이 있는 작은 방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책장 빼곡하게 꽂힌 양장 다이어리엔 신문 기사 스크랩과 그날그날의 기록들이 적혀있었다.

또 다른 작은 방. 책상 하나와 이부자리가 깔려 있다. 책상 맞은편엔 젊은 시절 자신의 사진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진, 그리고 직접 적은 메모가 액자 하나에 모자이크 돼 있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아프면 걸어라. 죽을 각오로 걸어라.” 그가 92세의 나이에도 동시를 쓸 수 있는 이유들이 전부 들어 있었다.

송 시인은 198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서 '새벽 눈길'이란 시로 등단했다. 이로부터 5년후엔 월간 '아동문예' 신인작품상 동시부문에 당선됐다. 또 5년 후인 2000년에는 시인의 동시 '우리집'이 중학교 1학년 도덕 국정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 1일 출간된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
▲ 1일 출간된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
이후 시인은 꾸준히 작품활동을 벌였다. 2013년과 2014년에도 동시집을 출간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1일, 그의 새 동시집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가 세상에 나왔다.

시인은 지난 추석 지금은 전부 커버린 손주들을 보며 동시집의 대표작인 '우리 손자 말 한마디가'를 썼다.


즐거운 추석 명절도 지났다/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손자 말 한마디가/가족 사랑을 가슴마다/새삼 찡하게 안겨 주었다

“아이고, 내 새끼, 내 손자가/이런 예쁜 말이 어디서 나올까?”/ “이 녀석 눈 똑바로 박힌 것 좀 봐요/큰 일 할게다“/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은 끝이 없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손을 흔든다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 중 '우리손자 말 한마디가'


송 시인은 “손주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왔다가 할머니한테 안겨 집에 안 가면 안 되냐고 묻더라고.

다 큰 손주를 보다가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며 “다른 한편으로는 할아버지 할머니 정을 모르는 요즘 사회모습 풍조를 지적하고 이런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자식과 손주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한편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아낌없이 담아냈다.

그는 “어머니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최인호 작가가 '왜 작품에 어머니가 자꾸 나오냐고 (독자들이) 묻는데 어머니가 좋으니까 그렇다'고 답했는데 나도 똑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또 “생전의 어머니는 늘 나에게 '으뜸가는 공부는 참는 공부이니라'를 강조했었다”며 “박속'만큼 깨끗하셨던 분이었다”고 어머니를 회상했다.

이번 동시집에서 시인이 조금 더 애착을 느끼는 시도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아이가 된다더니/그 말이 꼭 맞다

왠지/허전하고/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다

가뜩이나/아플 땐/아이고, 엄마소리가/저절로 나온다

문득 어릴 때 보았던/울며 엄마 품을 떠나던/송아지 생각이 난다

음매! 음매…!/나도 울면 안 되는 걸까?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 중 '엄마 생각'


구순을 넘긴 시인은 '엄마 생각'이라는 동시를 통해 시인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아플 때면, 또 그렇지 않을 때에도 가끔은 '엄마 품을 떠나던 송아지'처럼 소리내어 울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이다.

'피천득 할아버지'라는 동시에서는 97세까지 살았던 피천득을 언급하며 '하나도 때묻지 않은 아기셨어요 편안한 얼굴은 천사와 다름이 없으셨고요. 어쩌면 그렇게도 욕심이 없고 웃음이 많으셔요'라는 시구를 통해 페르소나를 밝히기도 했다.

송 시인은 “성인시보다 어린이 마음으로 쓰는 동시가 더 좋다”며 “요즘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데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공부해 나를 살찌워 작품을 내놓고 싶다”고 말했다.

▲ 송 시인이 매일 스크랩하는 신문노트
▲ 송 시인이 매일 스크랩하는 신문노트
시인의 하루 일과는 신문을 보고 그중 마음에 들거나 잘 모르는 부분을 스크랩하고 공부하는 것의 반복이다. 일기도 빼놓지 않고 작성한다.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데 언젠가는 잠자다 일어나 메모를 하기도 했다.

며칠 전 송 시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거짓 없는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사시기 때문에 송 시인님은 늘 소년입니다. 소년의 머리에서 나오는 참신한 생각들이 동시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사실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동시집을 책꽂이 가장 가까운 곳에 놓고 자주 열어보면서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다'는 내용도 함께 있다.

송 시인은 “내가 쓴 작품을 누군가가 읽어주고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게 삶의 보람이 돼 더 좋은 작품을 내놓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며 “'아흔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동심을 가지고 시를 쓰면서 정직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임효인 기자 hyoyo@

●송근영 작가는…

1925년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 출생
1945년 전주사범대학 심상과 졸업
1945-90 초등학교 교사ㆍ교감ㆍ장학사ㆍ교장 역임
1985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90 아동문예 작품상 당선
대전시 문화상 교육부문 수상
제24회 대전문학상 수상
 
1977년 충남대 교육가족 운동회 노래 가작
1978년 충남도 도민의 노래 가작
 
2000년 동시 ‘우리집’ 국정교과서 중학교 도덕1 154쪽 수록
 
발간
1990 교육 수상집 ‘우리 선생님의 환한 미소’
동시집 1990 ‘까치나무’
2003 ‘좋으면 좋다고 하자’
2014 ‘사랑아 솟아라 퐁퐁퐁’
2016 ‘할머니, 나 집에 안 가면 안 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헤드라인 뉴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교원들의 골머리를 썩이던 생존 수영 관련 업무가 내년부터 대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로 완전 이관된다. 추가로 교과서 배부, 교내 특별실 재배치 등의 업무도 이관돼 교원들이 학기초에 겪는 업무 부담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동·서부교육청 학교지원센터(이하 센터)가 기존 지원항목 중 5개 항목의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학교에서 맡던 업무 4개를 추가로 지원한다. 먼저 센터 지원항목 중 교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생존 수영 관련 업무는 내년부터 교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현재 센터에..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