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광식 서산교육지원청 장학사 |
요즈음 금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불평등한 세태를 반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표현은 금과 흙을 소재로 만들어진 수저라는 사전적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이 아니다.
21세기 오늘, 대한민국의 청춘들이 암울한 자화상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즉 가진 자들의 책무, 사회에서 우월적 지위를 점한 자들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기대치 부응을 요구하는 시대 사회의 바람이 담겨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존 롤스(Rawls)는 정의이론(A Theory of Justice. 1971.)에서 밝히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기 다른 잠재 능력을 가지고 각기 다른 환경의 가정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누가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느냐는 순전히 우연의 결과로, 마치 '자연의 복권추첨'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잠재능력을 잘 타고 났거나 좋은 가정에 태어난 사람은 복권을 잘못 뽑아 불리해진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적선을 하는 것이 도리에 맞으며, 사회는 마땅히 그러한 방향으로 제반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
출생의 순간부터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의 행운이라는 것이다.이런 행운을 부여 받은 자는 응당 그 행운의 몫을 나누어야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40년 전 그의 질타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금수저 흙수저' 논쟁으로 다시 점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의 혜안에 전율할 뿐이다.
그러나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명저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였다. 국가 간의 빈부격차에서 개인별 빈부의 문제,사회의 문제로까지 의식을 확대하면서 그의 지론인 가진 자들, 우월적 위치에 있는 자들의 무한 책무를 강조하며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론의 확산, 부자(富者)는 부자를 낳고,가난은 가난을 낳는 신계급사회의 도래 등은 국가 사회의 건전한 발전, 개개인의 행복이 보장되는 복지사회의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소수자, 청년, 노년 층 등 소외되고 어려운자들을 보듬어 안고, 함께 가는 어렵고 힘든 로정을 2016년 병신년 우리가 함께 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성취를 이루는 가장 큰 요인은 가정적 배경변인이 되고 있다. 출발선에서부터 흙수저를 물고 나온 아이들을 위해 더 배려하고 더 격려하는 노력을 해야한다. 출발선의 불리 때문에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듬어 안아 당당하게 우리 사회의 성원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 노력이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진행될 때 우리 아이들은 국가사회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인재가 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작은 정성, 작은 노력에 소홀하면 이 아이들은 제대로 설 수 없다.정책입안자들은 이 아이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여 사회의 성원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리스크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시작하는 아이들이다. 같이 가야한다.
조금 뒤처져 있지만 격려하고 함께해서 같이 걸어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교육현장의 종사자 언제 어디서나 드러나지 않는 무명의 용사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육복지라는 개념의 사회적 확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논리, 행복한 미래를 설계한다는 의지와 열정이 넘치는 교육현장 구현을 위해 초석이 돼야 한다.
Husen은 “교육의 목적이 학교에 다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배우는 데 있으므로 배울 것은 누구나 제대로 배워야 평등교육”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금수저, 흙수저론의 확산, 헬 조선 등 인 세태를 반영한 자조적인 표현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은 달라야 한다. 교육현장인 학교는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더디지만 함께 가야 한다. 2016년 한 해 교육 현장의 화두는 '함께'였으면 하는 바람을 새해 벽두에 가져본다.
권광식 서산교육지원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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