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 승인 2015-12-30 18:06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당신의 사랑이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만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생명의 표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받는 자’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고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마르크스의 사랑에 대한 정의다. 사랑은 받기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즉,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름끼치는 뱀파이어 소녀와의 사랑도 불사하는…


    코끝을 알싸하게 하는 겨울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12월로 접어드는 어느 휴일에 영화 ‘렛미인’을 봤다. 사실, 사랑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터인지라, 12살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은 낯설었다. 낯섦은 곧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사랑이란 뭘까. 도대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12살 소년, 영원한 사랑을 만나다’라는 카피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뱀파이어 영화는 사랑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고 속삭인다.

  결손가정 아이로 학교에서 끔찍한 따돌림을 당하면서, 살인마의 환상에 빠지는 것으로 출구없는 삶을 사는 오스카르. 오스카르의 그런 삶의 틈새로 어느날 12살의 뱀파이어 소녀가 다가온다. 곁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조력자를 시켜 사람을 죽이고 그 피로 연명하는 무시무시한 뱀파이어 소녀 엘리. 아름다운 풍광의 스웨덴 설원에서 오스카르와 엘리의 매혹적인 로맨스는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내가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어도 좋아해줄래?” 비참하고, 역겹고, 고독한 엘리의 이 말은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소름끼치는 뱀파이어 소녀와 왕따 소년의 우정과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 놀음’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 같다. 환멸과 공포로 옥죄는 현실 속에서 오스카르와 엘리에게는 서로밖에 없다. 그들에게 서로는 지옥을 벗어나는 구원의 길이란 걸 우리는 안다.

  위대한 사랑이든 추한 사랑이든, 사랑은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다. 사랑은 어려운 고난의 길과 같은 거다. 그래서 왜곡된 사랑은 위험하다. 열정이 지나치면,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자신 혹은 타인을 파괴한다. 히틀러는 가학성 음란증적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그는 자신한테 복종하는 자에게서 쾌감을 느꼈고, 그것에 의존했다. 수많은 인류와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그 사랑은 독거미처럼 위험하고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주인공이 됐다.
 
#조건없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다
 

  억압과 폭력을 사랑이라 믿는 것은 어느 관계에서나 존재한다. 흔히 부모와 자식간에 성립되는 이같은 사랑은 양쪽 다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는 모녀관계에서 비정상적인 종속과 지배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지배욕과 소유욕이 있는 여자는 진정한 어머니로서 성공할 수 없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자기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사랑의 형태일 것이다.
 
주인공 에리카 코후트는 남편을 잃은 어머니에게 남편의 대리자여야 했으므로 어떤 남자와도 각별한 관계가 될 수 없었다. 어머니가 그것을 철저히 금했고 스스로가 어머니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종속될 수 없음을 자신이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지배는 결국 에리카에게 사디즘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학대하는 마조히즘적 성향을 길러주는 결과를 낳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성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천착한다. 이런 낭만적인 사랑은 성적 매력과 성적 결합에 의해서 생애 가장 유쾌하고 짜릿한 경험을 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 이영애가 유지태에게 한 이 대사만큼 이성에게 유혹적인 언사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감정뿐인 사랑은 찰나적이다. 감정은 밀려왔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니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는 이성애적 사랑의 영원불변성에 대한 소망 혹은 환상일 따름이다.

  ‘사랑이란 그 사람이 널 끝없이 괴롭게 만들어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응답하라 1988’은 성보라의 내레이션으로 정의한다. 나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오빠가 살아생전 가족들을 끝없이 괴롭게 한다는 이유로 오빠를 미워했다. 막 생명을 내려놓은, 온기가 사라진 오빠의 차디찬 발을 쓰다듬으며 자책하는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하는 미숙아다. ‘사랑의 기술’에 대해 유려하게 설파한 에리히 프롬은 그 자신도 사랑의 실천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고 고백했다. 나 또한 앞으로도 실천적 사랑은 자신이 없다.
 
우난순 지방교열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