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
시나브로 국민 다수의 욕구가 변화했다. 경제적인 욕구에서 정치적인 욕구로, 다시 문화적인 욕구로 바뀌었다. 2020년, 2030년으로 가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정부의 목적이 크게 국민의 경제와 안전이라면 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다. 이 행복은 물질적인 부를 넘어 정신적인 부, 곧 문화적인 삶으로부터 온다. 이제 정부는 우리 사회의 문화력을 키우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각급 단위 정부의 수반(首班)이든 일반 공무원이든 문화를 모른다는 말은 언죽번죽 자신의 무자격을 증명하는 자술(自述)일 뿐이다.
문화는 감성 영역이므로 문화적인 욕구 또한 감성적인 욕구다. 국민의 감성적인 욕구를 채워 주어야 할 정부가 감성적인 정부여야 함은 당연하다. 이성적이기만 한 지금까지의 정부로서는 국민의 행복과 그 토대인 문화적인 삶, 그리고 사회의 문화력을 키우는 데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감성이란 여러 사람들에게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희로애락애오욕(喜哀愛惡慾)의 감정들 속에 자리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같은 마음 작용의 근본 원리다. 또한 이성이란 인간의 생각하는 힘 그 자체 또는 논리적 사고 능력이며, 흔히 함께 이야기되는 지성이란 어떤 목표 달성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지식의 활용 능력을 이른다.
서구에서는 오래도록 감성을, 이성을 방해하는 존재로 여겨 왔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데카르트, 로크 등 많은 철학자들이 그랬다. 그래서 감성은 '잘 작동하는 기계 속에 끼어든 모래알 같은 존재'로서 제거 대상으로 간주돼 왔다고 엘스터(J. Elster)가 지적한 것이다. 베버(M. Weber)도 시장과 정부, 그리고 경제와 정치 제도를 논하면서 처음부터 감성을 배제했다. 반면, 감성을 중시하는 융(C. Jung)과 같은 학자들은 감성을 활용하고 정제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상징, 예술, 종교 의식, 교육 등으로써 길들이고 가꾸고 도덕적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갖은 행위와 이를 순조롭게 유지하는 질서는 감성과 함께한다. 어떤 사회든 규범과 가치를 둘러싸고 갈등도 하고 경쟁도 하기 마련이다. 이 규범과 가치는 문화의 문제로 귀결되며, 감성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합리적 이성으로써 제도나 규칙을 만들 때도 감성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 이에 흄(D. Hume)과 스미스(A. Smith)는 감성과 이성은 적대 관계가 아니고, 감성적인 것이 곧 합리적인 것일 뿐 아니라 사회를 엮어 준다고까지 하였다. 현실적인 인간이란 냉철하기만 한 이지적 존재가 아니라 감성이 더해진 이성적 존재, 이성이 더해진 감성적 존재인 것이다.
감성과 이성을 두루 인지하면서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감성적 지성(emotional intelligence)이라고 한다. 국민의 문화적인 삶에 기반을 둔 행복 그리고 이 행복을 꿈꾸는 감성적인 욕구는 감성적 지성으로써만 진정으로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관료들은 감성적 지성의 행정을 펼쳐야 하며, 이러한 행정부가 감성 정부다.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운영으로 국가의 틀을 세우고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이루어낸 지금까지의 위대한 이성 정부는 이제 한걸음 진화해야 한다. 보다 품격 있는 국민 행복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서는 바야흐로 감성 정부로 이동해야 한다. 다음 글에서 이어 살피기로 한다.
박상언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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