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50억 떠안고 IMF 경험
날 믿어준 직원들·가족 보며
우석건설 부도 위기 넘겨
동병상련 마음으로 1억 기부
앞으로 5년간 1억원 더 전할것"
박해상 (주)우석건설 대표는 지난 9일 충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기부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25호 회원으로 가입했다. 앞으로 5년동안 1억원의 기금을 보태겠다는 약속과 함께 박 대표는 역경과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의 이번 결정은 역경과 아픔을 본인 역시 겪어온 만큼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되새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소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박 대표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물려받은 땅 한마지기 없는 가정에서 어렵게 자란 박 대표는 학비가 없어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중학교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입학을 포기해야 했어요.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공민학교에 어렵게 다시 들어갔지만 경제적인 여건은 여전해 1년을 쉬며 신문배달과 돈벌이에 나서야 했죠”라고 말했다.
어머니와 형의 도움으로 어렵게 학업을 마친 박 대표는 28살의 나이에 부동산 경기가 좋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그는“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가난이 주었던 비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고 당시의 심정을 회고했다.
사업은 호조를 보이는 듯 하더니 이내 역경이 찾아오고 말았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는데 거짓말처럼 상황이 곤두박질치더라구요.”
사업의 실패를 맛본 박 대표는 그냥 주저앉을 수 없어 공병을 수거해 팔고 표고버섯을 재배하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수입상품을 판매하기도 하는 등 재기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박 대표는 다시 부동산 중개업으로 복귀해 집을 중개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집을 중개하며 익힌 노하우를 통해 내가 좋은 집을 만들어 소개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건설업에 뛰어든 박 대표는 당시 판자촌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던 터라 나의 집을 갖고 싶다는 꿈에, 더 좋은 집을 짓겠다는 포부를 더하여 열심히 뛰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경은 또 다시 찾아왔다. 1994년 주택사업 연대보증으로 어마어마한 빚이 발생한 것. 당시 주택사업을 하게 되면 연대보증을 서게 돼 있었는데 보증을 선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하루아침에 빚 50여억원을 떠안게 됐다. 심지어 3년 뒤에는 설상가상으로 IMF외환위기까지 찾아와 그야말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박 대표는 “순간, 순간이 무서웠고 베란다 보기가 무서웠어요. 저도 모르게 몸을 던질 것 같았거든요. 유서 없이 자살하는 사람이 이해가 됐어요”라고 당시의 심경을 전혔다.
주변의 지인들이 차라리 부도를 내고 도망가라는 말을 했지만 박 대표는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우선 직원들에게 월급 20~30%를 내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마지막으로 사활을 걸고 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나를 믿는 직원들이 있었기에 우석건설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힘든 시기를 묵묵히 함께 해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더욱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힘든 시기를 함께 해준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저에게 오늘이 있었던 것은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준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그래서 나의 아내가 오늘을 있게 해준 가장 큰 은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부인도 여러 봉사단체에 참여하면서 회장도 맡는 등 왕성한 봉사활동을 하며 박 대표의 후견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가톨릭 신자인 박 대표는 그동안 기부와 봉사활동을 남모르게 많이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박 대표는 어릴 적 자신과 같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번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하면서 기부한 성금 또한 소년·소녀가장들의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을 원했다.
박 대표는 대한건설협회 충남도회·세종시회 회장을 맡으면서 질 높은 기부와 봉사활동으로 협회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박 대표는 “'역경'을 반대로 하면 '경력'이 되고 '자살'을 반대로 하면 '살자'가 된다”며 “역경을 잘 이겨내면 그 어려운 시기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경험과 경력이 되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들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경태 기자 biggertha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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