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방학에 무엇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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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방학에 무엇을 할까?

  • 승인 2015-12-23 14:35
  • 신문게재 2015-12-24 22면
  • 박노권 목원대 총장박노권 목원대 총장
▲ 박노권 목원대 총장
▲ 박노권 목원대 총장
바쁘다. 올해를 넘기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들 때문에 바쁘고, 한 해를 바쁘게 살았으니 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보자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느라 바쁘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을 살다 보니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 찾아와도 그 시간은 바삐 지나가버리고 만다.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는 조개 캐는 아낙처럼, 생각할 겨를도, 좌고우면(左顧右眄)할 짬도 없이, 그저 하던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게 바쁜 일상이 주는 폐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사(人間事)의 가장 터무니없는 일 중에서도 가장 터무니없는 게 바쁜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의 생산성 논리에 의하면 바쁜 것이야말로 칭찬받아 마땅한 것처럼 보이지만,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중한 것을 잃기 때문이다. 분주한 삶 속에서는 우리의 내면의 구조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져서 창의성이 발현되기도 어렵거니와 우리의 존재양식을 동물적인 차원을 넘어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일 따위를 기대할 수가 없다.

이제 방학이다. 학생에게 방학은 수업과 리포트와 시험으로부터의 해방이지만, 그것이 곧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동안 밀린 공부를 더욱 '가열차게' 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방학은 무엇보다도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자동화된 우리의 의식을 화들짝 깨우는 어떤 특별한 일을 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방학을 의미하는 영어의 베케이션(vacation)이란 말은 집을 비워두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의미다. 집은 편안함이요 안락함인데, 방학은 그걸 버려두고 떠나는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편안함과 안락함 속에서 자동화되고 화석화한 의식을 되살리기 위해 사서 고생하러 집을 나가는 것이다. 집에서도 그걸 할 수 있다면 굳이 떠날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전에 해보지 않았던, 우리의 의식을 깨어나게 할 어떤 일을 해보는 기간이다.

자동화된 의식을 깨울만한 일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우리 대학의 어떤 과에서는 학과 학생 전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낼 김장을 담그느라 며칠 동안 수선을 피우는 걸 보았다.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또 그들은 일 년 내내 다른 봉사활동을 한다고 들었다. 어느 젊은 교수는 노숙자들에게 배식하는 봉사에 참여했다가 무언가 말로 표현키 어려운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는데, 필자는 그것이 안일함 속에서 굳어졌던 의식이 깨어나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명현(瞑眩)현상이라 믿는다.

아이가 집을 떠나는 것은 많은 고통과 불안을 수반하지만 그 효과는 크다. 그래서 군 입대가 면제된 자식을 둔 어떤 부모는 입대 대신에 죽지 않을 만큼 고생하는 나라로 자유여행을 보냈다고 했다. 또 대학에 간 아이의 형편없는 첫 학기 성적표를 받아보고 충격 받은 어느 학부모는 고민 끝에 그 학생을 외국으로 여행 보냈는데, 쫄쫄이 고생하고 돌아온 그 아이가 그 후 완전히 달라졌다고도 했다. 모두 편안함과 안락함에 빠져 자식이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즐거운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도 “집이 최고야!”라고 말한다. 좋든 싫든 집 떠나면 고생이다. 그러나 집 떠나서 고생을 해봐야 집이 고마운 곳인 줄도 안다. 고생할까봐 자녀들을 품에 안고만 있으면 막상 떠나야 할 때 힘들기도 하거니와 집이 그렇게 고마운 곳인 줄도 모른다. 안락함 속에서 오히려 불만은 더 커지고 의식은 무기력과 안일함에 빠지게 된다. 한번 굳어지면 다시 유연해지기가 아주 어려운 게 우리의 의식이다. 찬바람이 살을 에이는 듯한 이 겨울이야말로 아이들을 내보내기에 딱 좋은 때다.

분주하지만 너무 살기 편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특히 젊은이들은, 그 의식을 부단히 깨울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한 기간이 바로 방학이다. 기왕에 보내려면 고생 짤짤이 할 수 있는 곳이면 좋다. 게다가 학비에 보탤 돈까지 벌어온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우리 학생들이 방학을 통해서 집이 얼마나 고마운 곳인 줄을 아는 것은 물론, 학교가 얼마나 안락한 곳인지를 깨닫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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