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기 대전대 정치학과 교수 |
그런데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는 '국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민을 위해서 당을 만들고, 국민을 위해서 중요한 결단을 내리고, 국민의 뜻에 따라서 정치를 한다고 하는 정치인의 말은 바로 그들의 명분이고, 그 명분에 나타난 '국민'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우리도 그들이 말하는 '국민'임에는 틀림이 없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정치인들의 눈에 보이는 국민은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국민이나 적어도 자신의 뜻이나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 국민에 한정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지 않고 자신의 뜻과 다르거나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국민을 바라보고 있다면 쉽게 '국민의 뜻에 따라'라던가 '국민을 위해'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은 너무도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자신의 뜻과 생각과 의견을 직접 표출하는 경우도 있고, 또 밖으로 나타내지 않고 있다고 해서 국민이 의견이나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대표는 자신을 지지하고 뽑아준 국민의 대표임은 물론이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도 대표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인이 말하는 '국민의 뜻'에는 자신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국민과 자신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국민의 뜻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지와 동의 그리고 반대와 비판은 흔히 갈등과 대립 그리고 대결을 가져온다. 이런 갈등과 대립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정치가 위기를 맞이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치는 바로 이런 갈등과 대립과 투쟁의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을 하고 분열보다는 통합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는 뜻이 다르고 지향하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간의 갈등과 대결을 조장하고 결국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는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는 정치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고 갈등과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마치 정치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정치현실은 '국민의 뜻'으로 포장되거나 위장된 '정치인의 뜻'에 따라서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치에서 그리고 정치인에게 명분은 어쩌면 정치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명분이 '국민'이라는 것으로 전부를 포함하려고 하는 것은 기만일 수 있다. '국민의 뜻'에 따라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명분 속에 담겨 있는 진정한 의미는 갈등과 대립이 아닌 조정과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생각과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고, 왜 다른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만약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방식과 방법, 절차와 범위 등 세부적인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원칙적인 것에는 동의하더라도 세부적인 것에 있어서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이 옳은 만큼 상대방의 주장도 존중돼야 한다. 상대방의 생각에 대한 존중, 이견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과 유연성이 바로 갈등과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출발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흔히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만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 바로 국민의 뜻이라는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은 바로 자신의 뜻을 따르고 동의하는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러나 국민은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는 것이고, 자신은 바로 이들 모두의 대표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박광기 대전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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