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훈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2001년 미국 무역센터 테러 후 몇 년이 지난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미국 대학에서 대테러 수업을 가르쳤었다. 당시 예측하지 못한 테러의 규모와 방식 때문에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고, CIA가 수집한 테러리스트들에 관한 정보와 FBI가 수집한 테러 예측에 관한 정보가 통합적으로 분석되고 공유되었더라면 예방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에 미국은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직후 미국은 국가안보국(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을 설치하고 모든 정보기관을 국가안보국 산하로 위치시켰다. 이러한 결정의 바탕에는 정보주도경찰활동(intelligence-led policing)이라는 학문적 근거가 있었다. 정부주도경찰활동은 범죄 및 테러에 관한 수집된 모든 정보를 한 곳으로 모으고(fusion center라고 함), 민관이 협력하여 정보를 분석(crime analysis이라 함)하고, 가공된 정보를 다시 모든 정보기관 및 형사사법기관의 말단까지 배포함으로써 범죄와 테러를 방지하는 것이다. 즉, 한 기관에 고여 있는 정보가 아닌 여러 기관을 거쳐 흐르는 정보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국내 테러방지법은 2001년 국정원 안을 시작으로 수차례 발의되었다. 하지만 모두 핵심 쟁점을 비껴갔다. 즉, 대테러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하여 대응하는 대테러센터의 위치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정보기관의 수사권 확대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핵심은 얼마나 폭넓게 수집된 정보를 얼마나 객관적이며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얼마나 폭넓게 배포하느냐, 즉 정보를 흐르게 할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느냐다. 사실, 정보를 가장 가까이서 다루는 국정원 산하에 테러에 직접적으로 대응할 센터를 두는 것은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대테러 정보 수집을 위해 수사권을 확대하자는 논의는 어차피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보 및 수사기관이 그것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즉, 해외사례를 통해 볼 때, 정보 및 수사기관이 합법적 절차를 통하여 범죄 및 대테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나아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업무의 하나일 뿐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기반으로 볼 때, 정보기관 및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이유는 고여 있는 정보를 독점하려는 권력의 속성 때문이었다. 테러방지법은 바로 이런 점을 개선하고, 다기관이 협력하여 고여 썩지 않고 끊임없이 흐를 수 있는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국정원, 군 정보기관, 경찰 및 검찰 정보기관 등이 수집한 범죄와 테러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한 곳에 모이고, 이를 민간 전문가 및 정부 전문가가 함께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결과를 관련된 모든 기관에 배포하여 포괄적으로 범죄와 테러에 대응하도록 하는 시스템. 테러방지법은 이러한 흐르는 정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구상되어야 하며, 어느 한 기관에도 독점되지 않는 대테러 정보, 그것이 전제된다면 대테러센터가 어디에 있건, 수사 효율성을 얼마나 높이건 그것이 대수롭겠는가?
테러 위험국 중 테러방지법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이 때문에 국민들의 안전은 오늘도 오리무중이다.
이럴 때 일수록, 정면 돌파가 필요하다. 정쟁의 화두에 매몰되지 말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찾아야 할 때다. 정보는 흐를 때 그 가치가 살아난다. 쉬지 않고 흐르는 범죄와 테러 정보를 생산할 수 있도록 국민적 뜻을 모아야 할 때다.
이창훈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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