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에 세워진 경찰 충혼탑. |
4월부터 부여에 고정간첩이 활동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국가안전기획부 등이 행적과 은거지를 추적한 지 6개월여만이다. 사찰인 정각사에서 접선이 이뤄진다는 징후를 포착한 안기부와 경찰 등 10여 명은 당일 인근에서 잠복하고 있었다. 몇 시간 후에 정각사에 거동이 수상한 2명이 나타나자, 안기부 요원 1명이 접근해 불심검문을 했다. 곧바로 1차 총격전이 30여 분간 벌어졌고 2명은 태조봉(해발 224m)으로 도주했다. 안기부는 곧바로 부여 경찰에 협조를 요청했고 부여경찰서의 모든 직원들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2명이 바로 간첩 김동식(당시 33세)과 박광남이었다. 두 사람은 부여에 있는 고정간첩 봉화 1호를 접선해 북으로 귀환하라는 지령을 받고 정각사를 찾은 것이다. 한 달전 배를 타고 제주도로 잠입한 후 가짜 신분증으로 목포를 거쳐 기차를 타고 서대전에 내린 후 대전 중구 유천동과 도마동 일대 월세방에서 활동해왔다. 또 서구 도솔산에 총과 탄약, 무전기를 묻어두고 북과 교신해왔다.
병력은 모두 태조봉을 둘러싸고 2인 1조로 나눠 수색과 잠복을 시작했다. 간첩을 처음 발견한 지 2시간여후 정각리 소재 4번 국도에서 2명을 발견했다. 간첩들을 찾은 이들은 부여경찰서 소속 나성주(당시 30세), 송균헌(당시 30세) 순경이었다. 정각제 연못의 경사진 배수로에서 갑자기 나타난 김동식이 권총을 쏘자 순경들도 총으로 맞섰다.
하지만, 나 순경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송 순경은 어깨를 맞고 쓰러졌다. 나 순경은 2주 후 순직했다.
간첩들은 다시 도주하다가 트럭을 탈취하려다 실패하고 석성산(해발 180m)으로 도주했다. 이를 발견한 장진희(당시 31세), 황수영(당시 31세) 순경이 뒤를 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총성이 울렸다. 김동식이 쏜 총에 복부를 맞은 장 순경이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동료 경찰들까지 가세해 몸싸움 끝에 김동식을 생포했다. 도주한 박광남을 찾기 위해 예비군 2만여 명까지 동원됐고, 결국 3일 후인 10월 27일 오전 11시경 부여군 가평마을 인근에서 박광남을 발견하자마자 사격해 검거했다. 박광남은 병원 후송 도중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경찰관인 나성주, 장진희 순경이 사망했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1997년 12월 10일 부여 대간첩작전 전적지 현장에 경찰 충혼탑을 건립했다. 부여군과 부여경찰서, 97연대, 203여단 등은 매년 경찰충혼탑에서 두 경찰을 추모한다.
세종=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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