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은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낮은 곳에서 묵묵히 버티며 지내왔을텐데 굳이 겨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말이다.
거리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지난 17년간 사계절을 일해온 김의곤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 소장을 만나 노숙인의 삶과 그가 걸어온 길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소장님, 잠깐 시간좀 내줘요. 오전 11시까지 종합지원센터로 갈테니 나오세요.”
김의곤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 소장을 인터뷰 섭외하는 데에 거창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24시간 불켜진 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 김 소장은 오후에 출근해 늦은 밤까지 근무하는 패턴을 알기에 출근을 조금 앞당겨 인터뷰하자고 양해를 구했을 뿐이다.
노숙인에 대한 여러 질문을 기자는 고심해서 만들었지만, 정작 그에게는 인터뷰 몇 시간 전에 읽어볼 여유만 주고 보내줬다.
그가 지난 17년간 노숙인과 함께 보내온 이야기와 생각을 즉문즉답 형식으로 대담을 나눴다.
-지난 10여 년간 정들었던 헌 집을 떠나 올해 새집을 구했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를 옮기는 것을 '두꺼비 이사대작전'이라고 기금 모금 프로젝트를 했는데 여기에 청룡봉사상으로 받은 상금까지 기부했다.
▲동구 정동에서 10년간 사무실로 사용하던 건물이 철도변정비사업의 대상지에 포함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전역 주변에서 멀어선 안 되고 임대료가 비싸서도 안 됐다. 그런 사무실을 찾아 1년 6개월을 돌아다녔다. 빈 건물 몇 곳을 찾아가 건물주와 협의했는데 노숙인 지원시설이라고 설명하면 다들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다시 찾은 게 인쇄거리에 있는 지금의 사무실인데 시청과 구청 그리고 통장님까지 나서 임대 줘도 괜찮다며 건물주를 설득했다.
또 이사할 건물의 임대료를 모으려고 후원 캠페인을 벌였다. '두꺼비 이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모바일홈페이지를 만들어 종합지원센터를 소개하고 마음이 맞는 분들에게 후원을 부탁했더니, 생각하지 못했던 3000만원이라는 큰 후원이 모였다.
덕분에 이사도 잘 마무리했고, 노숙인 시설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손길이 곳곳에 있구나 생각이 들어 다시 용기 내는 계기가 됐다. 본의 아니게 경찰청에서 올해 청룡봉사상이라는 큰 상을 주어 상금을 센터 이사비용에 보탤 수 있었다.
-지금은 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취약계층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전에서 처음으로 노숙인 지원을 시작했을 땐 어떤 모습이었나.
▲노숙인 지원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98년 대동종합사회복지관 빈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를 가져다 놓고 시작됐다. 1998년이면 실직자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올 때였고 대전역에 파라솔 있는 테이블을 설치해 노숙인들과 상담을 한 게 거리상담의 시작이었는데 당시에는 '실직 노숙인'이라고 불렀다.
대전역에만 100여명이 거리 노숙을 하고 있었고 워낙 많은 분이 노숙하고 서비스는 부족하다 보니 폭력적인 일도 자주 빚어졌다. 2004년까지 혼자 일했는데 낮에 사무실에서 찾아오는 노숙인을 만나고 밤에는 거리에 나가 다시 노숙인을 만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는 노숙인을 시설 내에 보호하는 개념으로 시설보호가 이뤄졌는데 시설을 거부한 거리 노숙인은 아무런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방치 수준이었다. 우리가 거리에서 상담하고 필요한 지원을 노숙인에게 제공해 욕구를 충족해주기 시작했다.
-당시 유성에 있던 집을 비워두고 노숙인들과 함께 수년간 지낸 일은 노숙인 보호에 얼마나 열성이었는지 짐작케 하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04년까지 노숙인 돕는 일에 혼자였는데, 밤마다 노숙인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불러대는 통에 유성 집에서 대전역까지 넘어오는 게 다반사였다. 거리도 멀고 대단히 힘들어 하루 이틀 노숙인시설 한쪽에서 지낸 게 아예 노숙인 쉼터에 잠자리를 만들어놓고 12년을 살았다. 오히려 내가 쉼터를 벗어나 자립한 지 5년 됐다.
노숙인 지원을 어떻게 시작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우연히 속아서 시작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당시 권술용 대동종합사회복지관 관장께서 노숙인 쉼터를 시작해야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면서 나에게 한 두 달만 일을 봐달라고 했다.
교회에서 자원봉사하면서 야간에 무료급식을 통해 노숙인을 만날 일은 있었지만,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런 와중에 노숙인 쉼터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전쟁터에 혼자 남은 느낌이었다. 죽고 사는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자 안 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지난 6월 제49회 청룡봉사상 수상(위)과 노숙인들과 함께한 축구 친선경기 모습. |
▲노숙인과 자주 부딪쳐 초반 2년은 정말 힘들었다. 사회복지사와 노숙인과의 관계에 대해 상담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노숙인 상담과 도움에 경험 있는 사람도 없었고, 여러 사회복지대상자 중에서 노숙인은 특별해 다른 사회복지 대상과는 또 달랐다.
몇몇 노숙인과는 멱살잡이로 하루를 시작할 때도 잦았고 폭력적인 상황도 있어 아침을 짜증으로 시작할 때도 있었다. 노숙인의 내적인 순수한 모습을 발견하고, 어느 정도 심리적 동질감을 느껴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대전 노숙인종합지원센터를 만날 일이 적어 기관이 노숙인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는 사회복지계 응급실 같은 곳이다. 갑자기 아프거나 최악의 상황에서 가는 게 응급실이다. 가장 빈곤한 상황이 노숙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노숙 위험에 있거나 거리 노숙을 실제로 하는 취약계층을 찾아 먼저 만나고 개입하는 게 종합지원센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빈곤한 삶에서 있던 분들이 노숙에 쉽게 노출되는데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도움은 무엇이 좋을지 상담해서 찾아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노숙이라는 극한의 상황은 같지만, 개인이 가진 욕구는 조금씩 다르다.
적절한 서비스를 찾아서 병원 치료를 안내하고 시설에 가시거나, 시설을 거부하는 분은 주거지원이나 자립지원을 통해 지역에 쪽방을 얻어 노숙을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있다.
노숙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환경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적 문제도 중요한데, 노숙인들은 느끼는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해결하지 않고는 노숙을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는 치료나 시설을 통해 자립을 준비해주고 노숙인들이 그동안 살아온 방법으로 스스로 독립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거리 노숙을 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어려움일 텐데 어떤 과정을 거쳐 노숙에 이르게 되나.
▲한순간의 문제로 노숙까지 이른다기보다 어렸을 때부터 빈곤을 경험했던 상황이 노숙을 초래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생활환경이 어렵고 가족관계가 취약한 상황에서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될 때 거리에 나오게 된다. 빈곤화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고립될 수가 있어 누군가와 새롭게 관계를 맺거나 여러 사람과 생활하는 걸 꺼린다.
종합지원센터를 통해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는 분이 지금도 18명 정도가 되고 연간 60명 이상 입원을 돕고 병원비를 지원한다. 센터에 방문하거나 저희가 직접 거리에 나가 한 차례 이상 상담을 진행한 노숙인이 연간 400여명 되고 연간 150여명이 노숙을 벗어나 자립한다고 보고 있다. 다시 노숙에 이르는 경우는 탈노숙의 20% 이하라고 판단되는데 그렇게 본다면 지금도 계속해서 노숙에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노숙까지 이른 상황에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노숙인을 향한 지역의 의료상황은 어떤가?
▲대전에는 시립병원이 없다. 시립병원이 있는 지역에서는 노숙인에 대한 진료는 크게 걱정 안 한다. 하지만, 대전에서는 노숙인 중에서 아픈 분이 있으면 병원비부터 걱정하게 된다. 의료보험 자격이 정지된 분들이 많아 비보험의 병원비를 센터에서 도와드린다. 대전시가 의료비 예산을 세워 숨통이 트인 부분도 있다. 또 충남대병원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 의료서비스 제공을 노력하는 기관과 일반 병·의원 중에서도 노숙인 환자가 방문하면 거리낌 없이 진료해주는 곳도 있어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노숙인 분들도 무상으로는 안 해 조금씩 돈을 보아 의료비를 보태고 있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법'을 만들 때 서울에 수시로 다니며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안다. 제도 시행에 따른 현장에서 개선할 부분도 느낄 것 같은데.
▲노숙인들이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굉장히 제한적이어서 실효성이 낮다. 대전에서는 한 종합병원에서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다른 병원에 가면 모두 비보험처리 된다. 노숙인을 위한 의료 지원을 하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또 노숙인 법이 시설중심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시설중심보다는 사회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보호역할이 커져야 한다. 시설에 있는 경우만 노숙인으로 봐서는 안 되고 거리노숙 외에도 쪽방이나 찜질방까지도 노숙인으로 인정해야 한다. 거리노숙에 이르기 전에 노숙상태를 끊어줘야 효과적인데 그런 부분에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대담=박태구 기자
정리=임병안·사진=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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