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자체 설계·건설한 가압경수로 열수력 종합효과 실험장치인 'ATLAS' |
샤클레로 가기 위해 파리 시내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차례로 달렸다. 시내를 벗어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어느새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2~3층짜리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광경이 펼쳐진다. 프랑스 원자력청(CEA) 샤클레 연구센터다.
지난 13일 금요일 터진 테러 사건 때문인지 정문에 이르자 경비가 삼엄하다. 장총을 든 경찰들과 민간 보안업체 경비요원들의 눈동자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연구소에 들어가기 앞서 꼼꼼한 출입절차가 철저하다. 연구소 전체가 보안을 이유로 사진촬영이 금지됐다.
1945년 설립돼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CEA는 현재 1만6000여 명과 연간 43억 유로(약 5조3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거대 연구집단이다. 프랑스 전역에는 11개의 CEA 연구센터와 4개 기술이전 지역센터가 있다. 샤클레 연구센터도 11개 센터 중 하나로, 원자력 안전과 물리·기초과학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규모도 큼직하다. 연구소 전체를 둘러보려면 어른 걸음으로도 2시간은 족히 걸린다. CEA 샤클레 연구센터 정문을 지나 연구소 내부로 들어서자 거목들이 줄지어 있는 정원과 잔디밭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얼핏 보기엔 연구소라기보단 잘 정돈된 공원같다.
▲ 프랑스 원자력청(CEA) 샤클레 연구센터 전경. |
ATLAS는 2007년 첫 가동을 시작해 세계적으로 원자력 안전 중요 실험장치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이후 보다 심각한 원자력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원자로 건설 디자인이 필요해짐에 따라 ATLAS가 국제적으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원자력 안전연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는 지난해 4월 원자로 설계기준의 초과사고를 대비한 종합효과실험 강화를 위해 ATLAS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한국이 주관해 이끄는 국제공동연구는 OECD-ATLAS 프로젝트가 유일하다.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 스위스, 독일, 중국, 일본 등 15개 국가의 22개 원자력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OECD-ATLAS 프로젝트는 2017년까지 3년간 약 32억 원이 투입된다. 우리나라가 16억 원, 참여 국가별로 나머지를 분담하는 구조다. 공동연구의 핵심은 최적의 원자력 열수력 안전해석코드 검증과 중대사고로 확대될 수 있는 심각한 원전 사고 발생시 물리적 현상에 대한 새로운 고부가가치 실험자료 생산이다.
프랑스 CEA는 ATLAS의 실험 데이터를 해석·비교하면서 국가에서 유일한 원자력 안전 전산코드 '까따르(CATHARE)'를 검증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중이다. 전산코드 프로그램 개발은 원전의 안전성을 예측하고 검증하는 데 필수다.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기 전, 원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미리 예측하는데 전산코드 프로그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ATLAS가 프랑스 뿐만 아니라 OECD 주요 원자력 개발국들의 원자력 안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셈이다.
버나드 페이디드(Bernard FAYDIDE) CEA측 OECD-ATLAS 책임자는 “한국의 ATLAS가 세계 원자력 안전의 중요한 국제적 키를 쥐고 있다”며 “ATLAS를 통해 프랑스 까따르 코드를 선진화시켜 차세대 연구로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 니에(Ho Nieh) OECD/NEA(원자력기구) 원자력안전기술규제 국장은 “원자력 안전 국제 커뮤니티에서 한국의 ATLAS는 새로운 디자인의 매우 훌륭한 원자력 안전 실험장치”라며 “후쿠시마 사고 이후 ATLAS 실험 데이터의 국제적 정보 공유가 세계 원자력 안전 분야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재주 OECD/NEA 원자력개발 국장은 “NEA 기술로드맵에 따르면 2050년 미래에 인류가 필요한 원자력 에너지는 930기가와트가 더 필요해 현재 380개 원자로에서 2.3배를 더 지어야 한다”며 “갈수록 원자력 에너지의 국제적 공조와 국제공동연구가 중요한 시점에 원자력 강국인 한국에서 제2, 제3의 ATLAS와 같은 국제공동 프로젝트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프랑스, 원자력 안전 연구 못하는 것 빼고 다 한다=CEA 샤클레 연구센터 내에는 방사선 방호·원자력안전연구소(IRSN) 시설들도 즐비해 있다. 어디가 CEA이고, 어디가 IRSN인지 구분이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이후 IRSN에서도 점차 원자력 중대 사고에 대응하는 다양한 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요오드 누출 대응 관련 연구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수십개의 IRSN 연구건물들 중 요오드 누출 대응 관련 연구를 하는 한 실험실에는 새로운 장비를 구축하느라 테크니션들이 동분서주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요오드 누출 중대사고를 대비해 격납용기에 투입될 다양한 필터를 개발하고, 제대로 요오드 필터가 작동되는지 실험하는 새로운 실험장치를 조립 중이다. 거의 완성단계라서 실험실에 은빛 장치들로 가득찼다. 연구진은 새로운 연구 준비에 다소 흥분된 모습이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요오드가 누출되면 노출 즉시 사람의 갑상선으로 흡수돼 각종 암 발병 등 생존 문제와 직결돼 있어 요오드 누출 사고 연구는 원자력 중대사고 연구에 핵심으로 꼽힌다.
요오드 실험실에서 3분쯤 떨어진 연구동에는 원자로 수소 폭발 대응 관련 실험장치 'TOSQAN'이 운영 중이다. 7㎥급 소형 실험장치이지만 작은대로 특성이 있다. 실험 정확도가 높아 유럽의 대표적 원자력 수소 중대사고 실험장치로 통한다.
IRSN 이외에 CEA에는 'MISTRA'라는 100㎥급 중형 실험장치가, 러시아에는 'KMS'라는 1865㎥급 대형 실험장치가 있다. 연구자들은 TOSQAN을 통해 원자로 내에 있는 수소를 적절하게 태울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연구한다. 원자로 내에는 피복관이 산화돼 수소가 발생하는데 제때 태워주지 않으면 폭발이 일어나는 원전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TOSQAN을 통해 수소가 원자로 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예측하고, 촉매를 이용해 자연적으로 수소를 태울 수 있는 점화코일 기계를 원자로 격납고에 몇 개를 설치하고 어디에 설치하는 지에 관한 문제를 놓고 열띤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TOSQAN 실험연구동과 이웃하고 있는 연구동에는 'STARMANIA'라는 거대 실험장치가 있다. 지름 1m 크기의 파이프라인들이 지그재그로 얽히고 설켰다. 이 장치는 원자로 내 압력차가 일어날 경우 수많은 방호문들이 얼마나 압력에 견디느냐를 실험하는 곳이다. 실험실 한켠에는 압력실험에 찌그러진 철문들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연구를 하는 곳이 없다.
최기용 원자력연 열수력안전연구부 박사는 “전통적으로 기초연구에 충실한 프랑스는 원자력 안전 연구분야에서도 과감하고 미래지향적 연구를 다양하게 수행하고 있다”며 “연구의 다양성과 미래 지향적 연구를 지향하는 프랑스의 기초연구 학문 분위기를 우리나라도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덕특구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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