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환 국무총리실 공보협력비서관 |
생생한 기억 속 그길 넘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동네가 많이 죽었다. 어둠이 내리니 그 동네길의 어둠은 더욱 짙다. 옛 그대로의 기와에 듬성듬성 비를 막으려 급수선한 흔적들, 낡은 대문, 금간 벽…. 이런 '낡은 집'들이 어우러져 한해한해 '낡은 동네'를 만들어 간다. '낡은 동네'는 대전의 중심이었던 중구를 '낡은 중구'로 사람들의 인식속에 자리잡게 한다. 길을 따라 둘러보니 분명 '옛도심'엔 3가지가 많다.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것은 비단 나만의 주관적 판단만은 아닐 것이다.
첫째, '전봇대'가 많다. 전선이 하늘을 가른다.
큰길이건 작은 길이건 전봇대가 거의 10m에 하나씩은 우뚝 솟아있는 듯하다. 전기공급을 위한 것인지, 흉물스런 장치가 전봇대에 매달려 있다. 도시미관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롭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위험하지 않나?' 안전부터가 우선 걱정된다. 전봇대가 많으면 어둠이 내릴 때 길이라도 밝아야 할텐데, 그렇지도 않다. 전봇대 사이사이 빼곡히 들어서있는 우람하고 울창한 플라타너스나무는 불빛을 빼앗아간다.
이래서 옛도심은 더 어둡다. 여학생들이 늦은 밤 귀가하는데도 특히나 내가 사는 선화동 여고앞길은 더더욱 어둡다. 낮엔 나무와 전봇대가 하늘을 가리고, 밤엔 나무가 전봇대의 불빛을 가린다. '저 전봇대를 땅속으로 넣을 수는 없는 것일까? 서울강남3구는 예산소진하려고 매년말이면 보도블록을 교체한다고 땅을 파는데, 부러울 따름이다. 한전에라도 달려가고 싶다.
둘째, '솟대'가 많다. 어느 동네엔 몇집 걸러 하나씩 나부낀다. 절도 점점 늘어가고 교회도 많아진다. 왜 많아지는가? 사람들의 삶이 고단하기 때문이다. 심신이 점차 나약해지는 어르신들이 더욱 많아진다. 남편 사업도 안되고 아들딸 취직도 안풀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천지신명께 의지하러 간다. 점을 보고 앞길을 묻고, 지극정성으로 구복을 한다. 일터가 많아지고, 사업이 번성하면 어떨까? 솟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줄어들고, 솟대는 줄어든다. 솟대는 '경제'를 말하는 하나의 지표이고, 솟대-일자리 반비례법칙이 적용된다. 문제는 경제다. 지역경제가 형편없다.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 돼야 한다.
셋째, '칼국수집'이다. 나는 칼국수를 무척 좋아한다. 할머니가 어릴 적, 국수를 많이 해주셨고 그중 최고는 칼국수였다. 친구들과도 양푼으로 담겨나오는 대전역앞 신도분식에 대고앞 공주분식, 상신분식, 대흥동 대선칼국수를 많이 즐겼다. 서울대 외교학과 입학이후 서울생활, 적응이 안되는 것중의 하나가 칼국수였다. 유명한 '**칼국수'가 별맛도 없는데 왜이리 비싼지….
최근 대전생활하면서 가장 행복한 이유중의 하나가 집마다 색다른 특색의 맛좋은 칼국수를 거의 5000원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기쁨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칼국수는 특히 옛도심의 보배로운 자산이다. 맛도 있고 추억이 있고, 집마다 독특한 색깔이 있다. '칼국수 마케팅' 생각해봄직하다. 게다가 얼마전 제안한 서울~대전 직행 KTX 38분이라면 더더욱 의미있지 않을까?
이렇게 옛도심엔 전봇대, 솟대, 칼국수집, 3가지가 유독 많다. 세월의 변화속에 도시는 계속 뻗어나고 발전하겠지만, 소위 '원도심', '옛동네'도 어느 정도는 함께 가야하야 하는데, 안타까운 현주소다. 3가지중 살려나갈 것은 확실히 살려나가고 바꿀 것은 깨끗하게 바꿔나가야 한다. 그 길을 고민할까 한다. 함께 하고 싶다.
강영환 국무총리실 공보협력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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