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권 목원대 총장 |
회사가 작아서 싫다는 학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업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취직을 않겠다고 말하는 경우에는 실망을 하며 화가 날 때도 있다. 특히, 영업직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학생이 그렇다. 회사의 업무를 요약하면 생산과 판매라 할 수 있는데, 회사에 취직하려 하면서 영업은 하고 싶지 않다니 기가 막힌다. 농사를 짓더라도 먹고 남는 농산물을 팔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 아니던가? 그런 학생들을 보면서 학교에서 어떤 교육이 있어야 하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큰 산에 오르다 보면 길이 여러 갈래인 경우를 종종 본다. 어떤 길은 정상으로 곧장 이어져 있어서 최단거리이지만 가파르고 험준하다. 그래서 또 다른 루트가 생긴다. 제2의 루트는 하나로 그치지 않고 보통 두세 개가 더 있다. 어차피 새 길은 옛 길의 대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산을 올라가 보지 않은 사람에게 각각의 길이 갖고 있는 특징을 말로써 알려주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지식의 전달은 말이나 글로써 이런 산의 정상에 이르는 여러 갈래의 길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각 코스의 길이와 소요시간과 특징 등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이 산에 대한 하나의 지식을 형성한다. 거기에다가 산 전체의 윤곽을 그림으로 그리고 각각의 루트를 그 위에 표시해서 보여주면 좀 더 일목요연한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각 루트의 느낌이나 세부적인 특징은 그림으로 나타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결국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눈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도 말로 설명하면 아주 어려워진다. 강아지를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강아지를 말로 설명한다고 가정해 보라. 그 구구한 설명을 듣고 강아지의 모습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서 머릿속에 정확히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거의 모든 강의가 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생님이 설명하는 내용을 이해하기도 힘들거니와,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게 제대로 이해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시청각 기자재를 최대한 활용한다 해도 그것은 직접 산에 오르는 것만 못하다.
게다가 지식의 대상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산은 산이되 애초부터 말로만 이루어진 산도 있다. 그런 것은 그림으로 보여줄 수도 없다. 그런 산은 그것을 설명하는 말의 뜻마저 어려워서 하나하나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설명이 설명을 낳게 되고 전달의 어려움은 배가된다. 이처럼 교육에서는 말과 글에 의한 설명이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이렇게 힘든 것을 무조건 외우라고 한다거나 요약해서 제출하라는 등의 숙제를 낸다면 학생은 필시 그 과목을 경원시하기 십상이지만, 어쨌든, 교육은 이렇게 말의 세계 속에서 몇 년을 보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그 속에 안주하게 되면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어지고, 바깥세계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현실과 맞서려면 처음부터 연습이 필요하다. 요즘의 학교에서는 각종 이벤트를 벌여놓고 학생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바깥세계를 위한 연습은 충분하다. 그게 축제 때 부침개와 막걸리를 파는 것이든, 봉사활동이든, 동아리 활동이든, 학생회 임원이 되는 것이든, 학창시절에 가능한 한 많은 역할을 짊어지는 게 좋다. 그 짐이 결국에는 다 자기 것이 되기 때문이다.
취직을 위해서 책만 파다가는 점점 더 현실로부터 멀어져서 급기야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넘어도 안 가본 고개에 한숨부터 쉬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과 글의 세계에 살면서도 한 발은 언제나 현실 세계 쪽에 놓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에서도 이를 위해 체험과 이론이 같이 가는 교육을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해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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