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목원대 미술학부 교수 |
눈앞에 마주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파악하지 못할 때, 답답함을 넘어 때로는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가리고 위장하며 타인의 시선을 감쪽같이 교란시킴으로써 복면은 알 수없는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복면! 불길해보이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 꺼려지는 무엇이다. 복면 뒤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악행을 저지를 때 종종 사용되기도 하는 경계대상이 아니던가.
최근 복면에 대한 반전매력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이 있어 이를 즐겨보곤 한다. 완벽히 얼굴을 가린 복면을 씌우고 자신의 노래실력을 맘껏 발산하게 한 후 최고를 뽑는 오락프로그램이다. 복면은 얼굴만 가리는 게 아니다. 노래하는 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든 것을 은폐한다. 귀를 기울여 듣게(傾聽)하는 마술을 부리며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복면을 쓰고 맞대결을 펼친 다음, 99인 판정단의 투표로 패자(?)는 복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다. 정체를 밝히는 순간은 단연코 이 프로그램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노래잘하는 사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명했던 가수 누구라 밝혀질 때,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판정단에 속한 전문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드러날 때 복면의 반전 매력이 돋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복면으로 '나'를 온전히 감춘 채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자. 그가 누구인지 맞춰보려 노래 마디마디, 몸짓하나, 손짓하나 그 모든 걸 따라잡으려 너나없이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복면의 정체를 밝혀보자. 복면을 쓴 출연자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 질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마주치는 나의 시선이 복면에 의해 상당부분 은폐되고, 가려지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음은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눈치 안보고 그 무엇을 행할 수 있음이 바로 '자유' 아닌가. 복면은 나를 가린 채 최선을 다한 후 타인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라 권한다.
복면 씌워진 출연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 복면은 그가 누구인지, 어떠한 지, 잘났는지, 못났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복면은 그가 어떤 능력을 펼치는가에만 집중하며 감상하도록 도울 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출연자라면 궁금증도 없을 터고 어떠한 경지를 보여줄지 예측가능하기에 재미가 반감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누구인지 모르게 만듦으로써 흥미를 증폭시키며 복면의 매력은 고조된다. 복면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편견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시청자를 무장 해제시키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을 감상하도록 유도한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순간, 패자는 노래중간에 복면을 벗으며 정체를 드러낸다. 패자가 승자보다 더욱 주목받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현장의 열기는 최고조에 이른다. 패자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공법(逆攻法)이 시청자를 매료시킨다.
일상에서 쉽지 않은 것이 뜻을 하나로 모을 때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나아가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운 것이다. 상대방의 체면, 신분, 지위, 권위, 이해관계 등 복잡한 변수에 의해 자신의 소신을 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또한 타인의 얘기를 무시하고 내 주장만 앞세우는 횡포를 자행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경청문화(傾聽文化)가 보이질 않는다.
복면은 실종된 경청문화의 복원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또한 중지(衆智)를 모아 나랏일을 도모하는 위정자들에게 복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뜻을 모아야할 때, 모두에게 복면을 씌우고 자신의 소신을 설파하길 제안해본다. 복면에 가려진 익명성은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효과가 뛰어날뿐더러, 이것저것 눈치안보고 최선을 다하게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에.
김영호 목원대 미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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