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옥 부여 장암초 교감 |
올해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비롯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여를 찾아오고 있다.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부소산 태자골 숲길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태자천 약수의 숨결이 빨라지고 뒤안길의 궁녀사까지 생기가 넘쳐나고 있다.
요즘 부여는 궁남지의 국화축제가 한창인데 궁남지의 연꽃축제가 한창이던 여름날 오후를 떠올리면 스스로를 '의자왕의 후손'이라 부르던 여행자의 뒷모습이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그날도 나는 흙냄새 짙은 태자골 숲길을 지나 부소산성을 한바퀴 돌고나서 간단히 저녁끼니를 해결할 요량으로 국수집을 찾았다. 한껏 멋을 부린 옷차림으로 보아 대부분 여행자처럼 보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앉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얼른 국수를 시켰다. 국수 한 젓가락을 먹기 시작했을 즈음 식당주인이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손님에게 무슨 말을 전하는가 싶더니 맨발에 슬리퍼차림의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자리의 손님에게 다가갔다.
“내 어머니께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모르는 분이 밥값을 내주시니 부끄럽네요. 어쨌든 잘 먹겠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아드님의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서 국수 열 그릇이라도 사드리고 싶네요. 얼른 어머니 식사 챙겨드리세요.”
나이든 어머니의 식사를 챙기는 아들의 모습에 끌린 여행자 한분이 밥값을 대신 내주신 모양이었다. 아들은 이내 자리로 돌아가 눈이 잘 안 보이는 듯한 어머니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식사를 거들었다. 보기 좋은 풍경인 듯도 했고, 어머니만큼이나 깡마른 아들의 손마디 때문에 얼핏 가슴이 먹먹해 지기도 했다.
손님들은 저마다 젓가락질을 멈추고 낯선 여행자의 오지랖(?)에 마음의 박수를 보냈다.
“저도 의자왕의 후손이랍니다~(허허). 아주 오랜만에 부여를 찾았는데 부여에 사람이 북적대는 걸 보니 제 마음이 다 좋네요.”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졌던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자신을 의자왕의 후손이라 고백하며 허허 웃으셨다.
'의자왕의 후손이라~~'
부여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그리고 교단생활의 대부분을 부여에서 보내온 사람들에게 의자왕은 좀 남다른 존재이다. 끝까지 보듬고 가야할 가족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의자왕은 곧 백제이고, 백제는 곧 부여이며, 부여는 곧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부여의 학교들은 각각의 방법으로 백제의 얼을 이어가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떤 학교는 후쿠오카와의 국제교류를 통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실감하고, 어떤 학교는 부소산성을 답사한다. 우리학교에서도 학구내의 '장하리3층석탑'을 1교 1문화재로 지정하여 때때로 보살피고 있다. 그러면서 부여의 아이들은 조금씩 '의자왕의 후손'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여의 선생님인 나는 행복하다. 그날의 참 아름다우신 '의자왕의 후손'처럼 우리 아이들도 각자의 세상에서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아갈테니까.
김미옥 부여 장암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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