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아침기온이 내려간다. 한낮에도 쌀쌀하게 느껴지는 가을. 내일(31일)이면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겨울을 향해 성큼성큼 향해가는 계절의 흐름 속에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지는 요맘 때, 따끈한 커피 한잔과 함께 하는 영화 한편이 그립다. 열정과 사랑, 감동의 키워드로 메마른 가슴을 덥혀줄 가을영화 3편을 소개한다. 여기에 미스터리 마니아들을 위한 '그놈이다', 고전적인 스파이영화 '맨 프롬 엉클'도 함께 즐겨볼만하다.
▲하늘을 걷는 남자=어려서부터 하늘을 걷는 도전을 꿈꿔온 무명 아티스트 '필립'(조셉 고든 레빗). 그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전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412m 높이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정식 오픈하기 전에 두 빌딩 사이를 밧줄로 연결해서 걷겠다는 것. 이 세상 누구도 생각지 못한 도전을 실행하기 위해 '필립'은 그를 도와줄 조력자들과 함께 고군분투하지만, 막상 운명의 날이 다가올수록 예상 밖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1976년 412m 높이의 뉴욕 쌍둥이 빌딩 사이 42m를 단 2cm 폭의 외줄에 의지해 걸어갔던 프랑스 출신의 아티스트 펠리페 페팃(66)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의 사임 소식을 누르고 신문 1면을 장식할 만큼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백 투 더 퓨처' 시리즈까지 드라마와 SF 모두에서 능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내공이 돋보인다.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완벽하게 재현된 점도 눈길을 끈다. '인셉션'(2010)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로 친숙한 조셉 고든 레빗이 주연을 맡았다. 조셉 고든 레빗은 영화를 위해 고공 줄타기를 연마, 촬영이 본격 시작된 시점에서는 공중에서 무려 10m이상 줄타기가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을 만큼 연기에 몰입했다고 한다. 제53회 뉴욕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찬사를 받았다. 412m 도심 속 허공 위의 아슬아슬한 곡예가 짜릿하다. “아바타 이후 최고의 3D 효과”라는 평. 가급적 3D를 권한다.
▲더 랍스터=커플로 맺어지지 않으면 동물로 변한다는 설정의 독창적인 로맨스 영화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도시, 유예기간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게 되는 기묘한 커플 메이킹 호텔을 둘러 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예기간에는 솔로 전용 호텔에 투숙해 짝을 찾아야 하는데, 규정을 어기고 숲으로 도망친 외톨이를 사냥하면 한 명당 하루씩 유예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근시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은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이미 개로 변한 형과 함께 호텔로 보내진다. 데이비드는 거짓 사랑 고백으로 한때 커플이 되지만, 거짓이 들통 나자 숲으로 도망쳐 외톨이 무리에 들어간다. 외톨이 무리에선 연인이 되는 것은 절대 금지. 신체 접촉도 제한된다. 외톨이 무리에서 눈이 근시인 여인(레이철 바이스)과 운명적 사랑에 빠진 데이비드는 또 한 번 탈출을 결심한다. 신선하고 기발한 설정과 사회적 풍자가 돋보이는 로맨스 판타지다. 사랑의 감정을 미화하는 사회를 풍자하며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세계 3대 영화제가 극찬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첫 번째 영어기반의 작품이다. 감각적인 연출과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벤 위쇼 등 국제적 연기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시너지를 빚어낸다. 특히 후덕한 뱃살에 안경을 쓴 소심한 표정의 콜린 파렐의 연기가 돋보인다. '대세' 여배우 중 한 명인 모델 출신 레아 세이두가 솔로들을 이끄는 지도자를 연기,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영화라는 평이다.
▲그놈이다=“하루 24시간, 365일, 매일매일 내가 당신 지켜 볼거야” 세상에 단 둘뿐인 가족 장우와 은지. 부둣가 마을의 재개발로 장우는 은지를 위해 서울로 이사를 결심하지만, 은지가 홀연히 사라지고 3일 만에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목격자도 단서도 증거도 없이 홀로 범인 찾기에 혈안이 된 장우는 동생의 영혼을 위로하는 천도재에서 넋건지기굿(저승 가는 길 배불리 먹고 가라고 붉은 천에 밥이 한가득 담긴 놋그릇을 바다를 향해 던지는 의식)의 그릇이 흘러 간 곳에 우연히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장우를 피해 달아나는 그를 죽은 동생이 범인으로 지목한 거라 생각한 장우는 그놈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여동생을 잃은 남자가 죽음을 예견하는 소녀의 도움으로 끈질기게 범인을 쫓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 작품이면서도 천도재, 넋건지기굿 같은 민간 신앙, 살인 사건을 예지하는 소녀 캐릭터까지 더해져, 미스터리와 호러가 함께 하는, 조금 색다른 스릴러물이 됐다. 1999년 부산의 청사포 해변마을에서 한 여대생의 죽음을 기리는 천도재에서 일어난 일을 모티브로 한다.
개봉 첫날인 지난 28일 '더폰', '마션'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믿고 보는' 배우 주원과 유해진의 연기조합이 좋다. 유해진은 죽은 동생이 범인으로 지목한 남자 '민약국' 역을 연기한다.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 약사의 선량한 모습부터 자신을 의심하는 '장우'와의 대립 관계까지,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캐릭터를 선보인다. 유해진은 올해 상반기'소수의견', '베테랑'까지 각기 다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맨 프롬 엉클=1960년대 미국 TV에서 방영된 첩보 드라마를 원작으로 했다. 1960년대 냉전시대, 미스터리한 범죄 조직에 맞서기 위해 미국 중앙정보부(CIA) 특급 요원 나폴리언 솔로(헨리 카빌)와 KGB 최정예 요원 쿠랴킨(아미 해머)이 적대적 국가 관계를 뒤로하고 힘을 합친다. 막강한 두 남자가 세계의 위기를 막기 위해 국제범죄조직에 맞서 벌이는 활약을 그리고 있다. '엉클'(U.N.C.L.E: United Network Command for Law and Enforcement)은 '세계스파이연합본부'라는 뜻으로, 허구의 단체다. 영국 TV드라마 '셜록 홈즈'로 유명한 가이 리치 감독의 작품이다. '007' 시리즈를 보는 듯한 화면 구성에 음악까지, 과거의 스파이 영화의 공식을 따른 고전적인 연출이 눈길을 끈다. '킹스맨이 되고 싶었으나 미션임파서블에도 못 미친다'는 관객평도 있다. 헨리 카빌, 알리시아 비칸데르, 아미 해머 주연이다. 휴 그랜트와 데이빗 베컴도 등장한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백발이 성성한 두 친구간의 진한 우정부터 10년째 이어오는 짝사랑, 가슴 절절한 부성애까지, 각기 다른 세 커플의 사연을 통해 우정, 사랑,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미안해' 스토리를 담아내는 남남 커플 김영철-이계인은 왕년의 챔피언 친구들인 '강칠'과 '종구' 역을 맡았다. '사랑해' 스토리를 그려내는 성유리-김성균은 까칠한 여배우 '서정'과 그녀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하며 10년째 짝사랑을 이어오고 있는 매니저 '태영'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고마워' 스토리를 그려내는 지진희-곽지혜는 형사 '명환'과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딸 '은유' 의 이야기다.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던 아빠의 뒤늦은 후회가 공감을 일으킨다. 뻔한 스토리 속에서도 주연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함께 잔잔한 감동이 있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라는 세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데엔 이 세마디면 충분합니다.
김의화 기자 joongdonews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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