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배재대 총장 |
가장 먼저 수저론을 논한 사상가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국가론에서 사람은 금, 은, 동, 그리고 철의 성분을 품고 태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플라톤이 본 세상은 두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즉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이다. 플라톤이 살던 기원전 4세기만 해도 전쟁이 잦았고, 철저한 귀족 중심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직접민주정치는 극히 제한된 사람들 사이의 얘기일 뿐이다. 당시 고대 그리스는 남자가 아니고 귀족이 아니면 큰소리치며 살기 힘든 사회였다.
사람에게는 성품 혹은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성품에 따라 산다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전쟁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란 플라톤은 어떤 사람은 명령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명령은 못하지만 남이 시키는 일만은 잘 하는 사람이 있다고 보았다. 이런 경우에만 사회가 잘 움직이고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 사는 사람이야 말로 타고난 성품이 있고, 플라톤은 이 성품이야 말로 신분과 관련시켜 타고 태어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이 수저론을 주장한 사람은 기원전 3세기경에 살았던 진나라의 진승이다. 젊은 시절 남의 집에서 밭을 갈아주며 살던 진승은 항상 가난했지만 권력을 쥐고 세상을 호령하는 꿈을 꾸곤 했다. 진승은 병사로 징발되어 북쪽의 수비를 명받고 북쪽으로 향하던 도중에 오광과 손잡고 봉기를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중국 최초의 농민 봉기인 진승과 오광의 난이다. 이때 진승이 봉기를 하면서 한 말이 바로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없다”이다.
진승의 이 말을 우리의 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바로 만적의 난이다. 고려 신종 때 집권자였던 최충헌의 개인 노비였던 만적은 천민들을 모아 봉기하려다 실패했다. 이때 만적도 역시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는 말로 천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이처럼 수저론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갑자기 생긴 말이 아니다. 플라톤은 수저론을 논하면서 금의 부모가 철의 자식을 낳을 수도 있고, 철의 부모가 금의 자식을 낳을 수도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금은동철이 혼합돼 태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여기서 플라톤이 수저론을 논하면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사회에 맞는 사람으로 키우는 교육이다. 부모도 자식도 자신이 어떤 성질을 갖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사람의 성질이 금인지 혹은 철인지 아니면 혼합인지 찾아내고 모두 금의 사람으로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는 그 사람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일을 시키고 그 결과 사회가 발전하며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
진승과 만적도 태어날 때부터 '상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모든 힘든 일을 다 했다. 하지만 사람의 신분은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당시 반란을 성공해 집권한 사람을 보면서 가슴 깊이 새겼을 것이다.
이렇게 수저론은 오래전부터 모든 사회에 있었던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갑자기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젊은이들이 뿔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수저론을 통해 젊은이를 국가가 책임지고 태어날 때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진승과 만덕도 자신들이 품은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떤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에게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가가 할 일과 개인이 할 일은 분명 다르다. 물론 국가는 개인의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은 국가가 할 일을 할 수 없다. 국가가 할 일을 다 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때 흙수저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젊은이의 화도 가라앉을 것이라 확신한다.
김영호 배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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