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간첩 김동식과 박광남은 부여 고정간첩을 접선해 북으로 함께 귀환하라는 북의 지령을 받고 이날 정각사를 찾았다.
이들은 한 달전 모선을 타고 제주도에 잠입해 가짜 신분증으로 목포를 거쳐 서대전역에서 내린 후 대전 유천동과 도마동 일대 월세방을 얻어 간첩활동을 벌여왔다.
대전 도솔산 아래에 북에서 가져온 총과 탄약을 묻고 무전기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북과 교신했다. 고정간첩 봉화1호를 만나 귀환하라는 지령에 간첩들은 권총을 소지하고 정각사에 도착했지만, 이들을 기다린 것은 우리 정보요원들이었다. 정각사 아래 20m 지점에서 마주한 우리 정보요원 1명과 간첩 2명은 이곳에서 1차 총격전을 벌였고, 간첩들은 태조봉(해발 224m)으로 도주했다.
20년 전 간첩들이 첫 총격전을 벌이고 도주한 야산은 이제 밤나무를 가꾸는 과수원이 되었고, 강아지들이 쫓아 나오는 조용한 마을이 됐다.
▲ 부여간첩사건으로 순직한 장진희·나성주 두 경찰을 기리기 위한 충혼탑. |
간첩이 도주한 태조봉 둘레에 부여경찰 2명 1개조씩 칼빈이나 M16으로 무장해 잠복에 들어갔고, 간첩 김동식과 가장 먼저 조우한 것은 방범과 나성주(당시 30세) 순경과 교통과 송균헌 순경(당시 30세)이었다.
정각제 연못의 경사진 배수로에서 튀어나온 간첩 김동식은 권총으로 먼저 사격해 왔고 두 경찰도 응사했지만, 나 순경은 머리에 깊은 부상을 입고 2주 후 순직했으며 송 순경은 어깨에 총알이 박혔다.
다시 도주를 시작한 두 간첩은 국도 4호선에서 트럭을 탈취하려다 실패하고 부여 방향의 석성산(해발 180m)으로 숨어들었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 경무과 장진희(31) 순경과 황수영(31) 순경이 산속으로 뒤쫓아 올라갔고, 다시 총성이 울렸다.
웅크린 채 숨어 있던 간첩 김동식이 겨눈 총에 장진희 순경이 복부상을 입어 쓰러져 결국 현장에서 순직했다. 황 순경 등 동료 경찰들은 몸싸움 끝에 간첩 김동식을 현장에서 생포했다. 산 깊숙이 도주한 간첩 박광남은 3일 후 군의 작전으로 사망했다.
20년이 지나 두 순직경찰의 아이들은 대학 경찰학과와 법학과를 졸업하거나 재학할 정도로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으려 정각제 연못에 경찰 충혼탑이 세워졌다.
또 생존 간첩 김동식은 귀화해 가정을 이뤘으며 2013년 자서전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에서 부여사건을 자세히 기술하면서 그의 손에 순직한 경찰이 있다는 설명이나 사과는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다.
고 장진희 경사의 형 장용일(58)씨는 “분단국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안보사건에 제 동생과 동료 경찰이 당당히 맞선 일을 계속 기억해 주는 분이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부여경찰서와 부여군, 97연대, 203여단은 오늘 오전 10시 30분 부여 정각제 연못 경찰충혼탑에서 부여대간첩사건 20주기 추모식을 거행한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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