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 금강산에서 이북 조카를 만나는 대전 대덕구에 사는 이태동(사진)씨가 양말과 내복의 준비한 선물을 정리하고 있다. |
기자가 21일 자택을 찾아가 만난 이 할아버지는 두 조카에게 줄 선물을 똑같이 포개놨는데, 두꺼운 양말부터 내복, 비타민, 화장품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 고향이 평양북도인데 마당에선 백두산까지 보이고 겨울엔 소나무가 얼어 갈라지는 '딱, 딱'소리가 메아리쳐. 나무가 얼어 소리를 낸대도 여기 사람들은 믿질 못하더군.” 고향 추위에 대한 이 할아버지의 기억이다.
6·25전쟁은 이 할아버지에게 가족과 생이별하는 계기가 됐다. 3살 터울의 누나와 5살 어린 남동생, 그리고 부모가 있던 집을 나와 무작정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다.
전쟁을 피하려는 생각도 있었고, 먹고 살 수 있는 곳을 찾으려 전쟁 중에 집을 떠나는 모험을 한 것이다.
이 할아버지가 남쪽으로 이주할 때는 땅 위에 선만 그은 38선이 철책선으로 바뀐다거나 남북을 반백 년 이상 오갈 수 없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던 시기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전쟁 중 남하한 것이고 내일 죽어도 여한은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절박했지.”
걸어 걸어서 대전에 도착한 뒤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며 5남매 가족을 일구는 동안 북에 있는 부모와 형제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이 할아버지는 “부모며 누나, 동생이 왜 그립지 않았겠어.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데 그냥 속으로 묵히며 살면서 지금까지 왔어”라며 “부모도 돌아가시고 누님과 동생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조카라도 만나 가족 이야기나마 듣고 맺힌 한을 풀어야지”라고 말했다.
그는 두 조카를 만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언제 어디에 모셨는 지, 그들의 부모는 어떻게 지내다 세상을 떴는 지 물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삼촌으로서 조카 가족을 돌봐주지 못한 미안함을 준비한 선물로 조금이나마 위로할 생각이다.
이 할아버지의 아들(61)은 “아버지가 혼자 남한에 내려와 고생도 하시고 외로움을 많이 겪으셨다”며 “이산가족 상봉 소식에 아이처럼 좋아하셔서 내가 더 설렌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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