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살과 봄바람의 간지럼은 도대체가 심란한 마음을 부추기기만 하는, 그런 봄이었다. 3년 전, 사내 등반대회가 있어 청양 칠갑산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몸이 찌뿌둥하고 목이 컬컬한 것이 감기 기운이 스멀스멀 온 몸을 휘감는 중이었다.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미리 얘기한 것도 아니고 당일 윗사람한테 얘기한다는 게 가기 싫어 핑계대는 거 같아서, 일단 회사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천장호까지 갔다.
으슬으슬 춥고 재채기, 콧물이 사정없이 방출하기 시작했다. 모자, 마스크, 패딩점퍼로 중무장했지만 내 몸과 마음은 한겨울 시베리아 벌판을 걷고 있었다. 전직원이 모여 칠갑산을 넘어 장곡사로 내려가 체육대회가 열릴 거라는데, 천장호 출렁다리를 건너긴 했으나 고민이 됐다. 계속 앞으로 가야 되나, 그냥 돌아갈까. 결국 출렁다리를 다시 건너 몇몇 후배들과 대전으로 와버렸다. 그 대가로 경위서를 제출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명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수없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부닥치게 된다. 그것이 사소할 수도, 인생 전반을 뒤흔드는 중대한 고비일 수도 있다. 선택의 결말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우리는 분주히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최인훈. 대학시절, 그로테스크하고 환상세계를 경험한 듯한 강열함을 안겨준 단편 ‘웃음소리’로 나를 매혹시켰던 작가. 중편 『광장』은 발표된 지 60년 가까이 되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지금 한반도의 정치현실을 대입해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생생함을 갖게 한다. 전쟁으로 인한 한국의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비판하는 것 같아 어색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혼란스러운 세계에 던져진 주인공 이명준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나는 공감한다.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현실을 비판하며 삶을 사랑했는데 모든 걸 잃고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다가 자살해야 했던 이명준. 『광장』은 남과 북, 밀실과 광장, 사랑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고민하던 이명준은 이데올로기에 좌절하고 사랑을 잃지만 회의하는 근대적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이명준의 죽음은, 중립국을 선택했지만 거기서도 희망이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자의 죽음이다. 이 소설은 한 지식인이 관념적 틀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치열한 사유의 궤적을 담고 있다. 이명준과 변태식의 대화는 이를 증명한다. 이명준이 “자네가 이처럼 고생할 만한 값이 남조선에 있었던가”라고 묻자, 태식은 “자네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만한 값이, 북한에 있었던가”라고 대답한다. 남조선에서도 그랬고, 북조선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믿지 못했던 이명준. 심지어 여자에게도 속았다고 믿는 삶…. 왜 이명준은 선택의 기로에서 늘 배반당해야만 하나. 왜 시지프스의 바위를 굴려 올리는 ‘운명’을 감당해야 하나.
“한국 정치의 광장은 추악한 밤의 광장”
인간은 여러 유형이 있다.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명준이 있는가 하면 변신의 귀재 박정희라는 인물도 존재한다. 박정희에게 선택은 기회의 순간이었다. 교사로, 일제장교로, 광복군으로, 남로당 프락치로, 반공주의자로 살아남아 결국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해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 박정희. 극과 극을 오가는 그의 변신은 권력의지의 소산 아닌가.
박정희의 분신 박근혜 정부는 이념논쟁의 광장을 조성하고 있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 발언에 이어 조우석 KBS 이사도 “문재인이 공산주의자라고 저 또한 확신한다”고 가세했다. 거기다 국정교과서 논쟁까지. 이미 과거가 돼버린 20세기의 박정희와 김일성을 호명하는 현상이다. 보수는 보수끼리, 진보는 진보끼리 뭉치면서 이념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면서 이념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였어요. …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정치의 광장 아닙니까?” 『광장』은 제대로 된 ‘광장’을 찾아 나서기 위해 방황하는 이명준의 고난스런 여정이다. 그 방황은 결코 끝낼 수가 없는 것이고 지상에서는 그 선택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바다로의 투신은 필연적이다.
30대 중반을 막 넘기던 그 해. 목포 앞바다에서 친구와 뻐끔담배를 피우며 단발마적인 환희에 젖어, 손목의 시계를 풀어 포말이 부서지는 바다에 던졌다. 그렇게 삶과 죽음, 좌와 우의 경계는 모호한 것이다. 이명준의 죽음과 나의 살아있음. 그것을 자로 재단하는 건 언감생심이지만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나는 이렇게 살아내고 있다. 잘가라 이명준!
우난순 지방교열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