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달리고 싶은 날이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도 한몫했지만 남해라는 곳은 처음이라 더 설렜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기다려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초행길은 언제나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최근에 파독광부와 간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국제시장을 본 적이 있다. 또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도 소개가 됐었던 독일마을. 이번 여행의 목적지다. 이름만 들어서는 고급 주택이 있는 마을과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이 반겨줄 것 같지만 이곳은 과거 어려웠던 한국의 경제를 일으켰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창밖을 보니 어느덧 삼천포 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삼천포로 빠진 버스. 여행은 이렇게 가끔 삼천포로 빠지는 게 묘미가 아닐까.
▲청춘, 독일아리랑이 되어=남해는 교통편이 불편하다. 버스 배차간격은 1시간의 1대 꼴. 방금 먹은 밥이 다 소화될 정도로 오랜 시간 정류장에 서 있다 보니 독일마을로 가는 버스가 왔다. 모두가 알아야 할 의무는 없지만 우리 역사의 일부가 그대로 녹아 있는 곳. 독일마을 초입부에는 남해 파독전시관이 있다. 파독전시관은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업을 기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남해 독일마을에서 보내고 있는 경제 역군들의 삶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건립된 곳. 넓은 부지에 비해 전시관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전시된 실제 사용했던 수첩과 장비들, 생생한 그때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보니 머나 먼 이국땅에서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쓸쓸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마음 한쪽이 저릿저릿했다. 오직 가족과 나라만을 위해 몸 바친 한국인들이 새삼 자랑스러웠다. 전시관을 나오니 독일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독일에서 살던 실제 집들과 똑같이 꾸며 놓은 마을을 보니 그들의 젊은 날의 수고로움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곳곳에 독일맥주와 소시지 등을 판매하는 카페테리아들이 이어져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집들과 독일국기와 태극기가 펄럭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독일마을 둘러보기 전에 파독전시관에 잠시나마 들러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가는길=대전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면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진주시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서 사천 IC나 진교 IC로 빠져나오면 된다. 시간은 넉넉잡아 3시간 30분~4시간이 걸린다. 대중교통으로는 남해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으므로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서울~남해 버스 중 대전을 경유하는 버스가 있다. 오전 10시, 오후 1시 30분, 오후 6시 30분 하루 세 대 뿐이므로 시간을 잘 체크해야 한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