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지방 사립대 '낙인' 찍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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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방 사립대 '낙인' 찍지 말아야

  • 승인 2015-10-14 14:25
  • 신문게재 2015-10-15 22면
  • 박노권 목원대 총장박노권 목원대 총장
▲ 박노권 목원대 총장
▲ 박노권 목원대 총장
마트에서 여행용 가방을 하나 샀다. 디자인이며 기능이 아주 훌륭한데다가 무엇보다도 컬러가 독특한 게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며칠 후, 어느 홈쇼핑 채널에서 여행용 가방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파는 물건이 내가 산 물건보다 더 나아 보이고 가격까지 저렴한 게 아닌가. 이미 산 물건을 물릴 셈 치고 그걸 또 주문했다. 배달된 그 가방을 전에 산 가방과 나란히 세워두고 비교해 보니 그 차이가 확연했다. 미안하긴 했지만 전에 산 가방을 물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수많은 비교를 하며 산다. 물건처럼 잘 골라서 써야하는 경우, 비교는 필수다. 처음 산 여행용 가방처럼, 그것 하나만 놓고 볼 땐 나무랄 데 없어서, 그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물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물건과 함께 놓고 비교해 보면 그 빛을 잃고 마는 경우가 자주 있다. 공공기관에서는 사소한 물품을 하나 사더라도 적어도 두 곳 이상의 업체로부터 견적을 받는다. 사람을 고르는 것도 결국은 비교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물건의 비교와 사람의 비교는 아주 다른 면이 있다. 한번 산 물건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기능이나 모습에서 더 나아지기는 어렵다. 이에 반해, 사람은 한번 공부를 못했다고 해서 영원히 못하란 법이 없다. 대학에 와서 뒤늦게 문리를 터득해서 학문의 매우 깊은 수준까지 파고드는 학생들을 자주 본다. 필자가 아는 어떤 교수는 자기 전공도 아닌 철학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학교 다닐 때 유일하게 F학점을 맞은 적이 있는 과목이 철학이었기 때문이라 했다.

또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다른 것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학생은 공부는 못해도 리더십이 있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이끌어가는 재주가 있는가 하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를 척척 해결하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덕목으로 공부 이외의 것은 이루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그러므로 단지 성적, 그것도 일정기간의 성적만으로 사람의 우열(優劣)을 결정하는 것은 부득이한 편법일 뿐,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것 하나만으로 사람을 판단해 그들이 속해 있는 집단까지 싸잡아서 잘하면 일류대학이고 좀 못하면 이류나 삼류로 낙인찍는다.

낙인이란 불도장이다. 그것은 한번 찍으면 웬만해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조금만 따져보면 그것이 터무니없는 기준에 의해 생긴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는데도 그것은 아주 오래 지속되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것이 그렇게 오래도록 지속되는 데는 일반인들의 무지와 무신경, 가끔은, 일부 못된 사람들의 악의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런 낙인에 의해서 차별받는 사람들조차 남들에게 그런 낙인을 찍어대는 경우를 본다. 그들은 마치 어떤 막강한 이데올로기에 호명(呼名)된 군중처럼 낙인찍기의 주체가 되어 그 일에 앞장서기도 한다. 그래서 일류니 이류니를 따지는 사람들 중에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런 비교와 분류에 의해서 피해를 당한 당사자인 경우가 아주 흔하다.

아마도 이런 비교와 분류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경우는 지방대, 그중에서도 사립대일 것이다. 지방이란 것만도 이미 차별적인 언어가 되어버린 데다가 경기가 나쁜 요즘은 등록금이 좀 비싸다는 이유로 사립대가 학부모의 등골을 빼는 대학으로 싸잡아 낙인찍히고 있다. 아마 지방이 없다면 서울은 가장 살기 어려운 곳이 될 것이고, 사립대가 없다면 우리나라의 대다수 대학생들은 공부할 곳이 없어질 것이다. 중국의 어느 도시에 가 보니 인구가 260여만 명이나 되는데도 대학이라곤 국립대 한 곳 뿐이었다.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다수 학생들은 우리나라보다도 더 멀리 떨어진 자국의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가야한다고 했다.

사람의 비교는 위도 아래도 없는 막상막하(莫上莫下)의 경계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누구나 차별 없이 사랑하는 일시동인(一視同仁)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어려운 처지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느라 분투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차별적인 언어로 찬물을 끼얹는 것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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