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충 충남도립대 총장 |
자리를 옮긴 뒤 몇 년 후 우연한 기회에 지방공기업 평가 결과를 보게 되었다. 내가 있을 때 A등급을 받았던 몇몇 공기업이 D, E등급을 받아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깜짝 놀랐다. 군단위에 있던 의료원은 도로가 신설됨에 따라 환자들이 대도시로 빠져 나가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한 공기업은 독점적으로 취급하던 품목을 민간과 경쟁하게 되어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보면 직원들의 근무성적을 평가하게 된다. 절대평가이다 보니 평가자의 주관에 따라 80점과 100점 사이의 점수를 줄 수도 있고 90점과 100점 사이의 점수를 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99점에서 100점 사이의 점수를 주기도 한다. 점수가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실제로 전체 순위를 정할 때는 절대점수가 고려의 대상이 거의 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매년 행정기관의 청렴도를 평가한다. 충남도는 매년 낮은 점수를 받아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 결과를 절대평가의 함정이라고 평가한다. 평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설문조사에서 충청도 사람들은 80점이면 후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지역 사람들은 후한 것의 기준이 좀 더 높은데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실제로 과거에 공직사회 인사비리는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이 발생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대학도 평가를 받고 있다. 평가결과가 대학의 구조조정으로 연결되다 보니 본연의 업무는 뒷전이고 모든 업무가 평가로 귀결되고 있다. 충원율, 취업률, 전임교수 확보율 등과 같은 정량지표에 특성화 NCS와 같은 다양한 정성지표를 선정해 평가한다. 평가요소가 많다 보니 평가도 어렵고 낮은 평가 받은 대학에서도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훌륭한 자식이 되고, 반대로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 해야 우수한 학생이 되고, 상사의 말을 잘 듣고 직원들에게 잘 보여야 스마트한 직장인이 된다. 소비자의 평가를 잘 받아야 기업은 성장할 수 있고 각급 기관은 해당기관의 정체성에 대해 결정권한이 있는 기관의 평가를 잘 받아야 존재할 수 있다.
평가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해지면서 중요성이 높아지다 보니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평가자의 재량의 여지가 넓어지고 정보에 먼저 접근한 사람들이 유리한 경우도 있다. 서류나 면접에 의존하여 평가를 하다 보면 실태를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정부정책에 따라 평가기준이 달라지다보니 평가의 일관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또한 평가 결과가 보수나 상여금에 연결되어 직원들은 본연의 업무보다는 평가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평가의 공정성이 가장 많이 인정되는 것이 시험이다. 공무원 채용시험이 그 대표적인 예다. 평가요소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수립 이래 공무원시험제도가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무원 시험제도가 잘못되면 매관매직으로 연결돼 국가존립 기반을 흔들 수도 있다.
평가는 경쟁을 촉진하고 경제성을 제고해 국가발전을 선도할 수 있다. 하지만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사회적 갈등이 유발되어 사회의 신뢰도를 저하시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저신뢰 사회는 미국의 미래학자 후쿠야마의 말처럼 국가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평가가 당초의 목적에 부합하고 평가 받는 기관이 수용할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 신뢰사회를 앞당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구본충 충남도립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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