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숙 온양고 교사 |
'팔자'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새삼스럽게 그것이 궁금해진다. 얼마 전 추석에 나는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누구보다 먼저 아파트 숲 사이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겠다는 욕심으로 해가 지자마자 베란다 창문 앞에 붙어 섰으며, 또한 '가족의 건강'같은 이런 소원 비슷한 것을 분명 떠올리고 있었다. '이런 미신에 가까운 행위는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며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애써 '꾸욱' 누르면서….
몇 년 전 체험 학습 차 학생들과 함께 만해 선생의 생가에 들른 적이 있다. 그곳의 문화 해설사가 이런 얘기를 했다. 이 집 터가 '천재'를 배출한 '정말 명당 중의 명당이니 반드시 툇마루에 한 번쯤 앉아서 그 기를 받고 가시라'고…. 이어서 '그 말을 듣고 나면 정말로 대다수의 탐방객들이 아무리 바빠도 한 번쯤은 툇마루에 앉아보고 간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 설명을 들은 후 생가 터에 복원되어 있는 자그마한 초가집으로 아이들과 함께 올라 가 보았으나, 그런 이유로 툇마루에 앉아 보고 싶다는 생각은 정말로 전혀 들지 않았다. 그 기를 받아 아이를 낳을 가능성을 거부해서만은 결코 아니었다. 굳이 해명하자면 그것은 위대한 사상가이자 시인에게, 아니 냉철할 정도로 몹시 이성적이었던 한 지성인에게 그런 속물적인 사연을 끌어다 붙임은 왠지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5살에 이미 '서당에서 한 번 배운 내용은 다 외워 버렸다'는 만해 선생의 일화를 들으며, 나는 이미 절망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어디 노력으로 되는 일인가? 5살배기가 노력을 한다면 얼마나 할 것이며, 그 경지가 어디 그렇게 어린 나이의 아이가 노력한다고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던가?
다시 원점이다.
그러나 어쩌랴?
'둔재'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지 싶다. '성공'은 그만 두고라도 그저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만도 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 '노력하는 모든 사람이 성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노력했다'는 말이 떠미는 대로 나는 내일도 무엇인가를 위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의 끝자락에, 혹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혹은 우리를 찾아올 지라도. 어차피 그런 게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우리네 삶이니까. 그러기에 아마도 나는 고교 동창의 말처럼 늘 훈장 티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어린 시절 의붓오빠로부터 겪었던 성추행의 잔흔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평생 고생하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봄날의 오전, 주머니 가득히 돌을 넣은 채 얼음이 풀리며 불어난 강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 기어이 생을 마감했다는 한 작가의 투혼을 생각하니 '운명'이나 '팔자' 따위를 언급하고 있는 일 자체가 몹시 초라하기까지 하다. 영국이 낳은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 묘비명은 이렇게 그녀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정복되지 않으며 굴하지 않는 나 자신을 네게 던지리라. 오, 죽음이여!(Against you I will fling myself, unvanquished and unyielding, O Death!).”
김민숙 온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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