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음식솜씨가 뛰어나지는 않다. 그러나 간장게장만큼은 기가 막히게 맛나다. 고 짭쪼롬한 맛이 흔한 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다. 금방 지어서 갓 퍼담은 하얀 쌀밥에 진하고 톱톱한 게장 국물을 비벼먹는 맛이란! 우리 식구들에겐 거의 중독에 가깝다. 시중에서 먹는 간장게장과 달리 엄마의 게장은 짠맛이 강하다. 짜디 짜지만 게맛과 양념맛이 어우러져 오묘한 풍미를 빚어내는 우리집만의 간장게장.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등에 언니·오빠 가족들이 오면 어린 조카들도 할머니의 게장하고만 밥을 먹었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의 입맛은 김치, 청국장 등 우리의 전통적인 밥상을 외면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조카들은 할머니가 담근 게장을 찾곤 했다. 그 어린 것들이 밥상에 달라붙어 게장국물을 찍어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하기만 했다. 제비 새끼들처럼 입을 딱딱 벌리며 밥숫갈을 입에 넣는 걸 볼 때마다 묻곤 했다. “맛있어?” “응 고모, 맛있쪄.”
#엄마의 짜디 짠 간장게장, 어린 조카들도 맛있어 해
▲ 사진=중도DB |
보통 식당에서 먹는 간장게장은 심심하면서 달착지근하다. 10여년전 후배와 봄에 하동으로 매화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신문에 유명한 맛집으로 나온 식당을 찾아갔다. 간장게장이 나왔는데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게심심하고 깊은 맛도 없고 또 비린내는 어찌나 심한지. 그때 알았다. 식당에서 파는 간장게장 맛이 이렇다는 것을, 우리집 게장은 다르다는 것을.
엄마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게장을 담근다. 핵심 재료인 간장은 집간장으로, 게는 박하지(박하게)로 쓴다. 담그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박하지를 깨끗이 씻어 자그마한 옹기에 채곡채곡 넣은 다음 생강, 마늘, 대파를 넣는다. 그런 다음 집간장을 게가 잠길 정도로 붓는다. 하루 뒤 간장을 따라내 냄비에 끓인후 식혀서 다시 붓는다. 이렇게 간장을 사흘에 걸쳐 세 번 똑같은 방법으로 끓여서 붓는다. 바로 먹어도 되고 냉장 보관해 먹는다. 엄마는 끼니 때마다 투가리에 먹을 만큼 게를 담아 마늘, 쪽파, 고춧가루, 깨소금, 청양고추로 양념해 냄비에 중탕으로 끓인다.
언젠가 엄마에게 민물게로도 담가봤냐고 물은 적이 있다. “어이구, 민물게는 더 맛있지. 이제는 민물게 구경하기 힘들어. 동네 앞 들판이 봄이면 그이(게) 새끼들이 새까맣게 강에서 냇물로 올라와서 논으로 들어오곤 했어. 그러다가 가을 벼 벨때 다시 강으로 해서 바다 맞닿은 곳으로 내려가는 겨. 그때 도랑에 발을 쳐서 그이를 잡는 겨.”
서두에 밝혔듯이 게장은 일품이지만 엄마가 만든 모든 음식이 입에 맞는 건 아니다. 내가 특히 잔소리하는 건 음식이 너무 달다는 것이다. 설탕을 들입다 붓는 '슈가 보이 백선생'저리가라다. 엄마가 원래 단 거를 좋아하지만 미각이 둔해진 건 지 요즘들어 더 달아졌다. 얼마전 집에 갔는데 총각김치 담가놨다길래 맛을 보니 역시나, 달았다. 엄마 없는 자리에서 언니한테 안 가져간다니까 “너 그거 안 가져가면 엄마 골 내셔. 가져가서 익으면 볶아먹든지 해”라며 철딱서니 없다고 한마디 한다.
#9살에 엄마 여의고 집안 생계를 도와야 했던 우리 엄마
종종 생각해 본다. 엄마가 유난히 단 것을 좋아하는 게 혹시 애정결핍은 아닌가 하고. 엄마는 9살 때 엄마(그러니까 외할머니)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집안의 생계를 돕느라 보통학교도 다 못마쳤다. 학교 가는 날보다 빠지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한창 엄마품을 파고들 나이임에도 먹고사는 일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영특해서 매번 우등상을 받아오곤 했단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때 외가에 일이 있어 엄마가 며칠 집을 비웠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부터 머리가 조금씩 아팠는데 결국엔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할 정도로 몸살을 앓았다. 변소도 아버지가 업고 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퀭한 눈으로 “엄마 언제와?”만 되풀이해 식구들을 근심스럽게 했다. 그런데 3일후 엄마가 집에 왔을 때 난 언제 아팠냐는 듯이 빨딱 일어나 밥도 먹고 사과도 먹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끔 매스컴이나 주위에서 엄마 없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없으면 곧 죽을 것처럼 먹을 수도, 숨쉴 수도 없는데 저 애들은 그리고 어린 내 엄마는 어떻게 견뎠을까.
소설가 윤대녕은 어리굴젓, 새우젓, 돔배젓, 꼴뚜기젓 등 각 지방에서 나는 모든 젓갈의 이름을 ‘어머니의 짠 젖’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럼 우리집 게장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 엄마의 게장을 맛보기 어렵게 됐다. 재작년 꽃게로 게장을 담갔는데 박하지 게장 맛이 안나서 하나도 못먹고 그냥 버리고 말았다. 그걸로 정나미가 뚝 떨어져 다시 게장 담글 맘이 안난다는 것이다. 지난 추석때도 게장 안 담글거냐니까 엄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신명을 잃으신 게다. 엄마의 짠 게장을 다시 한번 먹어봤으면.
우난순 지방교열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