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편견 딛고 한국신기록… 17살 하니 '영지'

  • 스포츠
  • 스포츠종합

장애 편견 딛고 한국신기록… 17살 하니 '영지'

'기록 질주' 지적장애 3급 여자육상 국가대표 임영지 화제 넉넉지 못한 집안사정, 할머니가 유일한 가족 "한계가 오는 순간까지 뛰고싶어"

  • 승인 2015-10-06 10:00
  • 금상진 기자금상진 기자
‘여자 200m T20 경기가 곧 시작되겠습니다’ 경기장 장내 아나운서의 방송에 선수들이 트랙으로 올라온다. 차려, 탕! 출발 신호가 울리자 한 소녀가 압도적인 스피드로 앞서 나간다. 관중석과 경기진행요원들 대기 중인 선수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린다. ‘우와~ 제 누구야? 엄청 빠르네’ 육상 경기에서 빠른 선수를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사람들이 놀라는 이유는 1위를 차지한 선수가 장애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 제10회 전국장애인육상선수권대회 금메달
▲ 제10회 전국장애인육상선수권대회 금메달


대전원명학교 육상부를 맡고 있는 성대선 교사는 영지를 보는 순간 그냥 달리기만 잘하는 평범한 소녀가 아님을 직감했다. 성 교사는 “육상선수가 아님에도 자세가 남달랐다”며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만 갖춰진다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15세계발달장애인종합대회 한국대표 선발전 우승
▲ 2015세계발달장애인종합대회 한국대표 선발전 우승

영지의 재능은 원명학교로 전학 후 1년 만에 한국신기록 달성이라는 쾌거로 나타났다. 17세의 어린 장애인 소녀가 대한민국 육상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것이다.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있던 임영지(17. 대전원명학교)선수의 모습은 여느 동갑내기 여고생과 다름이 없었다.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와 웃음소리가 교차했다. 대회를 앞둔 특별 훈련기간에도 영지의 표정은 항상 밝다. 성 교사는 “영지의 밝은 성격은 훈련 보다 대회에서 나타난다”며 “실전에서 기록이 좋게 나오는 이유가 긴장을 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 제9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 우승
▲ 제9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 우승

임영지 선수는 지난 9월 에과도르 2015세계발달장애인종합대회 한국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하며 자신이 세운 한국신기록을 갱신했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진출에 한발 더 다가선 것이다. 한국신기록을 세운 소감을 묻는 질문에 “기쁨과 동시에 자신의 기록을 또 한 번 깨야 한다는 부담감이 함께 들었다”고 대답했다. 기록에 대한 부담감은 일반인 선수와 다름이 없었다.
▲ 제8회 전국장애인전국체전 금메달 수상 후
▲ 제8회 전국장애인전국체전 금메달 수상 후

영지는 처음부터 밝은 선수는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까지 일반학교 특수반을 다니면서 일반인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영지의 담임인 이응혁 교사는 “처음 봤을때 기가 많이 죽어있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대인기피증이 있었다”며 “오늘의 영지를 만든 것은 체육부 선생님들의 노력과 열정이 주요했다”고 말했다.

영지의 밝은 표정 속에는 사실 가슴 아픈 과거가 숨어있다. 영지의 부모님은 영지가 3살 때 집을 나가버렸다. 영지 할머니와 강아지 뽀뽀가 영지의 유일한 가족이다. 올해 초 아버지가 돌아왔지만 객지 생활에서 얻은 병으로 제대로 된 병원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체육부를 맡고 있는 임승완 감독은 “영지의 가정환경은 동료 학우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편에 속한다”며 “재능 있는 선수임에도 지원이 충분하지 못한 사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영지의 표정은 여전히 밝다. 영지의 꿈은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고 원명학교에 실무자로 취업하는 것이다. 영지는 “내가 언제까지 육상을 할 지 모르겠지만 한계가 오는 순간까지 뛰고 싶다”며 “미래는 알 수 없어도 달리기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영지는 오는 10월 강원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또 한 번의 금메달을 예고하고 있다. 내년 4월 중국에서 열리는 리우장애인올림픽 쿼터경기에서 순위권에 들어가면 올림픽출전권이 주어진다. 영지가 보유한 200m 한국신기록은 28초23다. 일반인 한국신기록 23초 69와 4.54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계기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17세의 어린나이를 감안하면 2020년 도코장애인올림픽 시점에는 메달권에 진입이 충분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인피니트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 임영지, 대한민국 육상국가대표 영지의 질주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후원문의 대전원명학교 042-620-8621

뉴미디어부 금상진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2.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3.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4. 세종시 50대 공직자 잇따라 실신...연말 과로 추정
  5.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1. 대전시노인복지관협회 종사자 역량강화 워크숍
  2.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3. [취임 100일 인터뷰] 황창선 대전경찰청장 "대전도 경무관급 서장 필요…신종범죄 강력 대응할 것"
  4.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5. [사설] 충남대 '글로컬대 도전 전략' 치밀해야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