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요즘 지내는 차례나 제사는 옛날에 비해 예법이나 음식이 간소해졌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진중하게 격식을 갖춰 지냈지만, 종가집이 아닌 다음에는 가까운 가족끼리 모이는 친목 모임의 성격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콘도나 호텔 같은 곳에서 제수 음식을 배달시켜 차례를 지낸 후 연휴를 즐기는 풍토가 생겨나고, 차례를 지내더라도 떡 대신 피자를 올리거나 닭 대신 양념 치킨을 올린다고도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세시풍속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전통문화가 너무 변질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기도 하다. 조선시대 '주자가례(朱子家禮)'와 같은 형식적 절차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번잡스러울 수 있어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지만, 차례와 제사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좀 더 뜻 깊은 명절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흔히 제사라 하면 유교 의례라고 생각해 공자부터 떠올리게 된다. '논어'(태백)를 보면 공자가 제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귀신에게는 효성을 다하는 것(致孝乎鬼神)'이라 하여 조상의 제사를 극진하게 모셔야 한다고 했다. '논어'(학이)편에서 증자는 '장례를 신중하게 처리하고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될 것(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이라고 해 장례 잘 치르고 정성껏 제사를 지낼 것을 이르고 있다. 공자의 예(禮) 사상을 이어받은 순자는 “제사는 추모하는 마음의 표현이며 참된 마음과 믿음, 사랑과 공경을 지극하게 하는 것(祭者志意思慕之情也 忠信愛敬之至矣)'이라고 했다.
유가의 이러한 사상은 한나라 때 '예기(禮記)'에 체계적으로 확립되었으며, 송나라 때 주자는 각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논했는데 이것을 모아 '주자가례'가 편찬되었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시대에 '주자가례'는 우리나라 관혼상제의 지침이 되었으며, 특히 효와 관련된 제사와 장례는 중요시되었다. 이러한 주자가례를 조선의 실정에 맞도록 학문적으로 고찰하고 보편화시킨 것이 기호학파의 예학으로, 우리 충청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옛 문헌에 전해 오는 제사에 대한 기록이나 전통의례로서의 제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2000여 년 전의 '논어'가 아직도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히고 있듯이, 사람의 삶과 관련된 일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근본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부모의 몸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나아가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은 어찌 변할 수 있겠는가. 효는 이러한 인간사의 근본이 아닐 수 없으며, 제사는 사후에도 이어지는 효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나이가 들고 보니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꼭 조상에 대한 공경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다. 제사상에 음식을 진설하고 어린 손자까지 함께 절을 올리면 대대손손 이어지는 혈통의 연속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조상을 섬기는 좋은 기운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흘러들면서, 제사가 조상에 대한 예를 넘어서서 나 자신과 자손들을 위한 공덕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의 영(靈)과 육(肉)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우리 역시 자손에게 이를 물려주고 있다. 증자가 제사를 '조상을 추모하는 것(追遠)'이라고 했듯이 자신이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제사로서 그 은혜를 기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유효한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한다. 시대에 따라 또는 지역이나 각 가정에 따라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절차와 방식은 다르지만, 차례와 제사가 바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조상과 후손을 이어주는 소중한 시간임을 잊지 않는다면 명절은 우리에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김희수 건양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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