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의미를 되새기며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의미를 되새기며

  • 승인 2015-09-30 14:07
  • 신문게재 2015-10-01 22면
  • 김희수 건양대 총장김희수 건양대 총장
▲ 김희수 건양대 총장
▲ 김희수 건양대 총장
북적거렸던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니 한 해 중대사를 다 치른 듯 홀가분하면서도 뿌듯하다. 서울 등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까지 마치니 자손으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는 흡족한 마음이 든다.

요즘 지내는 차례나 제사는 옛날에 비해 예법이나 음식이 간소해졌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진중하게 격식을 갖춰 지냈지만, 종가집이 아닌 다음에는 가까운 가족끼리 모이는 친목 모임의 성격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콘도나 호텔 같은 곳에서 제수 음식을 배달시켜 차례를 지낸 후 연휴를 즐기는 풍토가 생겨나고, 차례를 지내더라도 떡 대신 피자를 올리거나 닭 대신 양념 치킨을 올린다고도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세시풍속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전통문화가 너무 변질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기도 하다. 조선시대 '주자가례(朱子家禮)'와 같은 형식적 절차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번잡스러울 수 있어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지만, 차례와 제사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좀 더 뜻 깊은 명절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흔히 제사라 하면 유교 의례라고 생각해 공자부터 떠올리게 된다. '논어'(태백)를 보면 공자가 제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귀신에게는 효성을 다하는 것(致孝乎鬼神)'이라 하여 조상의 제사를 극진하게 모셔야 한다고 했다. '논어'(학이)편에서 증자는 '장례를 신중하게 처리하고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될 것(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이라고 해 장례 잘 치르고 정성껏 제사를 지낼 것을 이르고 있다. 공자의 예(禮) 사상을 이어받은 순자는 “제사는 추모하는 마음의 표현이며 참된 마음과 믿음, 사랑과 공경을 지극하게 하는 것(祭者志意思慕之情也 忠信愛敬之至矣)'이라고 했다.

유가의 이러한 사상은 한나라 때 '예기(禮記)'에 체계적으로 확립되었으며, 송나라 때 주자는 각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논했는데 이것을 모아 '주자가례'가 편찬되었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시대에 '주자가례'는 우리나라 관혼상제의 지침이 되었으며, 특히 효와 관련된 제사와 장례는 중요시되었다. 이러한 주자가례를 조선의 실정에 맞도록 학문적으로 고찰하고 보편화시킨 것이 기호학파의 예학으로, 우리 충청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옛 문헌에 전해 오는 제사에 대한 기록이나 전통의례로서의 제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2000여 년 전의 '논어'가 아직도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히고 있듯이, 사람의 삶과 관련된 일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근본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부모의 몸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나아가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은 어찌 변할 수 있겠는가. 효는 이러한 인간사의 근본이 아닐 수 없으며, 제사는 사후에도 이어지는 효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나이가 들고 보니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꼭 조상에 대한 공경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다. 제사상에 음식을 진설하고 어린 손자까지 함께 절을 올리면 대대손손 이어지는 혈통의 연속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조상을 섬기는 좋은 기운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흘러들면서, 제사가 조상에 대한 예를 넘어서서 나 자신과 자손들을 위한 공덕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의 영(靈)과 육(肉)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우리 역시 자손에게 이를 물려주고 있다. 증자가 제사를 '조상을 추모하는 것(追遠)'이라고 했듯이 자신이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제사로서 그 은혜를 기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유효한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한다. 시대에 따라 또는 지역이나 각 가정에 따라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절차와 방식은 다르지만, 차례와 제사가 바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조상과 후손을 이어주는 소중한 시간임을 잊지 않는다면 명절은 우리에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김희수 건양대 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